프랑스 파리 인근 A15 도로엔 가로등이 없다. 도둑들이 전선을 잘라가는 바람에 깜깜해졌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되레 줄었다. A16 고속도로도 연 90만유로의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불을 껐지만 사고가 늘지 않았다. 속도 제한 없는 독일 아우토반에도 가로등이 없다.
이들 사례는 ‘도로가 밝을수록 좋다’는 고정 관념을 돌아보게 한다. 등불로 밤거리를 밝힌 조명의 역사는 17세기에 시작됐다. 1662년 영국 런던에 석유 가로등이 처음 등장했고, 5년 뒤에는 파리에도 들어섰다. 19세기엔 가스등에 이어 백열등이 발명됐다.
이 덕분에 문명사회는 ‘백색 도시’가 됐다. 어디에서나 강렬한 전조등과 광고판, 가로등이 반짝인다. 빛은 문명과 안전의 상징이다. 하지만 과도한 인공조명은 치명적인 ‘빛 공해’를 초래한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빛 공해가 심한 나라다. 지나친 빛에 노출된 인구 비율이 주요 20개국 중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높다. 인구의 66%가 너무 밝은 데 살고 있어서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어려운 ‘암순응 장애’를 겪을 정도다.
잠들기 전에 보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는 강한 청색광을 방출한다. 이는 학습과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수면과 휴식에는 해로운 빛이다. 수면 호르몬이자 천연항암제인 멜라토닌은 어두워져야 생성된다.
독일 생물학자이자 빛 공해 전문가인 아네테 크롭베네슈는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에서 “강한 인공조명은 인간의 생체리듬을 해쳐 우울증, 비만, 암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하고 동식물의 먹이사슬을 교란시켜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건강에 안 좋은 청색광 비중이 적은 조명을 꼭 필요한 곳에만 설치하고, 자기 전에는 빛의 침입을 차단해 숙면을 취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제의에 따라 유럽 국가들은 국민 건강을 위한 실외 조명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있다. 다행히 서울시도 2025년까지 빛 공해 50% 줄이기에 나섰다.
강한 인공조명은 밤하늘의 은하수와 별까지 볼 수 없게 만든다. 이런 현상을 ‘스카이 글로(sky glow)’라고 한다. 별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아이들의 꿈도 희미해진다. 그래서 정진규 시인은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별들이 보인다’며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노래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