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이런 변화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07년 아이폰으로 시작된 디지털 혁신기술은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불과 10년 만에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신인류를 탄생시킨 스마트폰은 도구의 의미를 넘어 삶의 중심이 됐다. 인간이 기술의 도구가 돼 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디지털 과학기술 혁명 시대가 가져온 삶의 방식 변화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고, 우리의 사유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산업사회 당시 중요하던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바뀌고, 생산이 플랫폼으로 대체되면서 경제 구조와 질서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기술과 정보를 보유한 자들이 힘을 가지게 되면서 선택적 소통으로 계층 간 갈등과 소외가 심화되고 있다.
디지털 과학기술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인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간적 윤리와 책임이 경시되는 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과학기술의 혜택 이면에는 불평등으로 인한 인권 침해가 있는가 하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니 기후 변화 위기가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래학자 게르트 레온하르트는 과학기술 혁명 시대에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의 융합이 강조되고 있지만, 지속가능성과 인간적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창의성과 연민, 독창성, 상호성과 책임감, 공감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과 파국을 경고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을 추진할 때 필요한 사람 중심의 AI 윤리 기준이 발표됐다. 최근 우리나라도 인간성(humanity)을 최고 가치로 두는 AI 윤리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 사회의 공공선, 기술의 합목적성 등 3대 기본원칙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의 가치중립적 경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보완할 시의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혁명과 혁신을 통해 꽃피웠던 문명들이 홀연히 사라졌음을 알고 있다. 붕괴된 문명의 모든 사례에서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붕괴된 문명에는 붕괴를 피할 선택의 길이 있었다.
디지털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든 반면, 인간성을 파괴해 인간의 존재 근거를 약화시키고 있다. 과학기술의 지향점에는 인간이 있어야 하며, 인간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환경에 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과학이 가져다준 생활수준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학자인 아서 클라크는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술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마술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학기술의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 마술이 어떻게, 무엇을 위해 쓰일 것인가는 더 중요하다. 지금은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지속가능하게 해줄까?’라는 질문을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