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족, 코로나 진단업체까지 덮쳤다

입력 2021-06-06 17:46
수정 2021-06-07 01:43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국내 코로나19 진단장비 회사로까지 번지고 있다. 확진 여부를 판단하는 진단장비의 생산이 줄줄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은 최대 10배에 달하는 ‘웃돈’을 주고 반도체칩 구하기에 나서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6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분자진단 회사 중 한 곳은 최근 진단장비 구동을 제어하는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를 구하지 못해 유전자증폭(PCR) 장비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 이 회사가 주로 사용하는 MCU는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일본 르네사스 등에서 생산된다. 공급 부족을 겪는 시스템 반도체는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전압조정기 등 구동을 제어하는 MCU다.

실제 이들 회사는 홈페이지에 주문 후 구매까지 35~47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국내 한 진단기기 업체 관계자는 “약 10개월 뒤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진단 과정엔 검체를 채취하는 진단키트와 확진을 판정하는 진단장비가 쓰인다. 코로나19 진단에 가장 많이 쓰이는 분자진단 방식엔 바이러스 유전자를 증폭하는 장비가 필수적이다. 씨젠, 바이오니아, 미코바이오메드 등 분자진단 업체 대부분이 장비를 판매하고 있다. 최근엔 병원이 아닌 일선 현장에서 유전자 증폭 작업을 할 수 있는 현장 진단기기(POCT)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병원용 대형 장비보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 진단시간도 짧기 때문이다.

현장 진단장비엔 10개 정도의 MCU가 들어간다. 반도체칩 비용은 장비 원가의 2~3% 수준이다. 한 진단장비 업체 대표는 “몇 천원짜리 반도체칩이 부족해 수백만~수천만원의 장비를 판매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며 “현장 진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이어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면역진단 회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면역진단이란 혈액 비말 등에서 바이러스로부터 생성되는 단백질(항원·항체)을 검출하는 방식이다. 임신 진단기처럼 키트만으로 확진을 판단하는 제품도 있지만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진단장비도 일부 사용한다. 면역진단 업체인 피씨엘은 반도체 부족 사태를 우려해 향후 1년6개월분의 반도체를 이미 구매해놨다. SD바이오센서도 3~6개월치 반도체 부품을 확보했다. 하지만 일부 기업은 반도체를 미리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분간 진단 업체들의 반도체 수급난은 지속될 전망이다. 대부분의 회사가 반도체 재고를 늘리는 분위기여서 수요가 갈수록 늘고 가격은 급등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MCU는 작년에 개당 1만원이었는데 요즘엔 10만원까지 올랐다”며 “재고를 충분히 확보해놨지만 MCU 부족 현상이 지속되면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 자동차 등 다른 산업에 비해 진단기기 분야의 반도체 수급난이 더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보기술(IT), 자동차 회사에 비해 ‘바잉파워(구매력)’가 크지 않아 우선 공급 대상이 아니다”며 “무역상 등을 통해 재고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충분한 양을 구하는 게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김우섭/이주현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