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기한(9월 24일)을 110여 일 앞두고 중소형 암호화폐거래소의 ‘무더기 폐업’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은행으로부터 실명 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좌를 발급받아야 영업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은행이 제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다 금융당국도 문제 해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서다. 업계에선 60여 개 거래소 중 4~5곳만 살아남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독려 요청
6일 금융권에 따르면 20곳의 국내 암호화폐거래소 관계자들은 지난 3일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등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실명계좌 발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고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맺은 거래소만 오는 9월부터 정상 영업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ISMS 인증을 획득한 거래소는 20곳이며, 실명계좌 요건까지 갖춘 곳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대형 거래소뿐이다.
거래소 측은 간담회에서 “은행들이 기존 (실명계좌 발급) 업체와만 제휴하고 신규 업체와는 안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은행에 실명계좌 발급을 독려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위는 정부가 은행에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들은 자금세탁이나 전산 오류, 해킹 등 보안 사고가 터질 경우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 때문에 거래소와의 제휴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기껏해야 4대 거래소 외에 한 곳 정도만 실명계좌 발급 문턱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선 “그동안 투자한 자본금과 자금세탁방지(AML) 역량 등을 갖췄는데,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였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당국과 은행들이 책임을 회피하며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선 실명계좌를 이미 확보한 4대 거래소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달부터 다음달까지 각 제휴 은행과 재계약 심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계약 연장에 무게가 실리지만, 일부 거래소는 재계약을 못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빗썸은 실소유주인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의장이 최근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돼 ‘대주주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나머지 거래소에서도 입출금 지연 문제 등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자기 거래소서 거래 시 과태료 1억원FIU는 3일 간담회에서 거래소 측에 사업 추진 계획서에 반영할 권고 사항을 안내하며 ‘정밀 검증’을 예고하기도 했다. 당국은 임직원과 재무 현황 등 기본 정보와 함께 최근 5년간 △임직원의 불법행위 발생 여부 △해킹 발생 내역 △입출금 지연·거부 사례 내역 △기타 정부기관으로부터 조사·제재받은 내역 등을 계획서에 적시하도록 안내했다.
암호화폐 공시체계 운영 방법과 신규 암호화폐의 상장 절차 및 기준 등을 담을 것도 권고했다. 현재는 허위 공시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해당 코인에 관한 정보 등이 투자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또 특정 암호화폐 발행 주체인 ‘코인 재단(코인개발업체)’이 거래소에 상장을 신청하면 거래소가 자체 심의위원회를 거쳐 상장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코인의 가치와 가격 등 핵심 사항을 사실상 코인 재단이 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또 거래소 직원이 자기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할 경우 1억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