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화질 TV인 ‘8K TV’보다 이론상 해상도가 최대 1만 배 높은 TV가 있다. 양자점 발광다이오드(QLED) TV다. 양자점은 나노미터(1㎚=10억분의 1m) 크기의 작은 반도체 입자를 말한다. 빛을 발산할 수 있어 백라이트유닛(BLU) 없이도 얇고 가벼운 TV나 휴대폰 화면을 만들 수 있다.
반도체는 간단히 말하면 전자(음전하 운반체)와 정공(양전하 운반체)이 서로 미세한 거리(에너지 차)를 두고 전하를 주고받으면서 정보를 저장하거나 처리하는 장치다. 그런데 반도체 크기가 전자와 정공 거리만큼 작아지면, 물리적으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양자 구속효과’라고 한다. 이 효과가 나타나는 반도체가 양자점이다.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 빛(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을 흡수해 발광한다.
시판 중인 QLED TV는 양자점 반도체를 적용했다기보다는 BLU에 양자점 필름 한 층을 더해 색 순도를 높인 LCD(액정표시장치) TV에 가깝다. ‘진짜 QLED TV’를 구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양자점이 한 번 합성되면 밝기와 색깔을 조절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양자점을 기판에 촘촘히 분포한 뒤 이를 컨트롤하는 기술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국내 연구진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는 물리학과 박경덕 교수와 성균관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KAIST 공동 연구팀이 양자점의 밝기와 색깔을 조절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고 4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나노 탐침 현미경과 원자현미경을 썼다. 이 나노현미경에 달린 탐침은 가로 세로 10㎚ 공간에 대기압의 1만 배인 1기가파스칼(Gpa) 수준의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특수장비다. 두 현미경을 사용해 양자점에 압력을 가하고, 이때 양자점의 기계적 변형에 따라 변화하는 발광 양상을 분석했다. 양자점이 찌그러질 때 빛의 밝기와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나노 단위로 추적했다는 뜻이다.
박경덕 교수는 “양자점을 금 소재 탐침과 금 박막 사이에 위치시키면 발광 세기가 10만 배 이상 커지는 것을 확인했으며, 색깔을 결정하는 에너지 밴드 갭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에 개발한 원천기술을 적용해 65인치 TV를 양산한다고 가정하면 이론상 가능한 해상도는 가로 세로 1억 픽셀”이라며 “이는 기존 8K TV보다 1만 배가량 높은 해상도”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나노 크기 양자점은 정소희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 우주영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공정플랫폼연구부 선임연구원이 제작했다. 양자점 안정화 공정은 정문석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 결과 해석은 김용현 KAIST 물리학과 교수가 맡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ACS 나노’에 실렸으며 국제특허(PCT)를 출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했다.
정소희 교수는 양자점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도 새로 개발했다. 수학적 모델링과 실제 실험을 결합해 기존에 알려진 인듐비소(InAs) 양자점의 크기를 약 4배 이상 증가시켜 7.9~10.1㎚ 크기로 균일하게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성균관대 연구팀 관계자는 “1700㎚ 이상 적외선 파장을 흡수하는 친환경 양자점을 처음 개발했다”며 “군사, 의료, 통신, 자율주행 등 분야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적외선 소자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원천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