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리고 덮기 급급한 軍·警의 민낯, 국민은 기가 막힌다

입력 2021-06-04 17:16
수정 2021-06-05 00:03
성추행 피해 20대 여성 부사관의 죽음과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의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부사관 유족이 이번 사건 전에도 최소 2명의 상관으로부터 비슷한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함에 따라 사건 은폐 시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이 커 보인다. 이 전 차관도 폭행 동영상 공개에 “폭행 사실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혐의를 인정해 ‘정차(停車) 중 벌어진 일’이라던 경찰 해명이 거짓임이 밝혀졌다.

이 전 차관 사건은 경찰 수사권과 관련된 본질적 문제이고, 군대 성추행은 군 기강 차원에서 결코 간단히 볼 수 없는 문제다. 군과 경찰이 안보와 치안 전담기관이란 본분을 망각한 채 사건의 진실을 덮고 가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판박이’로 보여줘 국민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성 부사관의 극단적 선택은 사건 직후 신고했음에도 상관의 회유와 은폐 시도, 군 수사당국의 미온적 대처가 빚어낸 어이없는 비극이다. 사건 정황이 녹음된 블랙박스를 제출했음에도 가해자 수사가 사건 발생 12일 만에야 시작됐다는 점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어제 사퇴한 공군참모총장도 사건 발생 43일 만에 첫 보고를 받았을 정도로 상부 보고가 의도적으로 지연·누락됐을 가능성이 있다. 군 검찰이 어제 공군 군사경찰단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불미스런 일은 일단 은폐하고 보는 군의 폐쇄성이 다시 한번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이 전 차관 사건도 경찰 수사 과정의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여전하다. 서울경찰청 조사단이 나섰지만, 사건이 벌어진 작년 11월 상부 보고 없이 담당수사관 단독으로 내사종결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점이 그렇다. 관할 서초경찰서장 등의 인지 여부, 넉 달간 수사를 뭉갠 의혹, 상부 보고 여부 등은 밝히지 못하고 깃털만 턴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판국이니 군과 경찰이란 중요 국가기관의 내부 통제와 사건 대응이 ‘어떻게 동호회만도 못하냐’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특히나 경찰은 국가수사본부 창설로 지위와 권한이 막강해졌는데도 권력 앞에선 한없이 약한 조직임을 다시 한번 드러낸 셈이 됐다. 안보와 치안이란 공공서비스는 대체재가 없다. 그렇기에 내부 위법·일탈행위에 강력한 통제장치를 갖추고, 조직 명운을 좌우할 사건엔 신속·투명하게 대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기대를 무너트리는 일이 계속되고 있으니 국민은 얼마나 답답하고 기가 막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