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카카오, 불안한 네이버, 지켜보는 SM엔터 이수만' [차준호의 썬데이IB]

입력 2021-06-07 05:50
수정 2021-06-07 15:42

‘거친 카카오, 불안한 네이버, 그걸 지켜보는 이수만 SM엔터 총괄프로듀서’. 최근 M&A 시장에 핫한 매물로 떠오른 SM엔터테인먼트를 지켜본 IB업계 관계자의 평이다. 컨텐츠 분야에서 전면전을 펼치는 네이버·카카오간 전장에 SM엔터가 화약고가 됐다는 설명이다.

IB업계에 따르면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주주인 이수만 총괄은 지난해 말부터 보유한 SM엔터 지분(18.73%) 매각 절차를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당시 텐센트 등 중국계 기업과 물밑에서 접촉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초엔 이 총괄의 지분 매각 의사를 접한 하이브(옛 빅히트)가 먼저 협상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이 총괄 측에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국내외 IT기업?게임사 들과 접촉해 온 끝에 최근 카카오와 단독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카카오의 엔터사 진격?…가격 + 네이버 ‘알박기’에 고심 M&A업계에선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상장(IPO)을 앞두고 있는 카카오가 SM엔터를 인수했을 때 시너지가 분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엔터 산하에 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 크래커엔터테인먼트,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매니지먼트 7개사와 음악 레이블 4개사를 산하에 두고 있다. 국내 최정상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아이유도 소속돼 있다. 현재 연예기획사 시장 내 20% 시장점유율을 보유한 SM엔터를 인수할 경우, 5% 남짓인 시장 점유율도 25%로 2위권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1위인 하이브(33%)를 바짝 추격하는 형태다.

무엇보다 컨텐츠 측면에서 카카오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혀온 K팝 '플랫폼'의 부재를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거래일 수 있다. SM엔터의 경영권 지분을 확보할 경우, SM엔터가 운영하는 플랫폼 '디어유'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브와 네이버의 연합 플랫폼인 '위버스'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차례 물밑 협상에도 양측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가치에 대한 눈높이 차가 워낙 커서다. 카카오 측은 주당 4만원 수준의 인수가를 제안했지만 이 총괄 측이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상장사인 SM엔터의 주가는 지난 4일 2만8600원이었으나 관련 보도가 나온 뒤인 28일에는 4만5000원까지 뛰어올랐다. 31일 종가는 4만3700원이었다.) 또 이 회장 측은 SM엔터 지분 매각 이후에도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 등을 통해 일정 정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상장 절차를 앞두고 잡음을 피하려는 카카오 측이 난색을 보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경쟁사 네이버가 이미 SM엔터와 긴밀한 협력에 나서고 있는 점도 카카오 입장에선 고민거리다. 과거 네이버는 SM엔터와 혈맹을 맺으며 일본 자회사, 국내 드라마제작사, 공동 컨텐츠펀드 조성 등으로 총 1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특히 네이버는 SM엔터의 일본 자회사 SMEJ플러스 지분 30%를 보유, 2대주주로 등재해 일본 사업에서 협력을 꾀하기도 했다. 기대했던 시너지가 발휘되지 않고 있지만 일정정도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다. SM엔터의 국가별 수익 비중 중 일본은 20%를 넘으며 단일 국가 중 가장 크다. 카카오 입장에선 SM엔터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경쟁사인 네이버의 견제 속에 이 계약관계를 청산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발등의 불’ 네이버…이례적 엔터사업 진출 나설까카카오가 SM엔터 인수 의사를 밝히자 네이버도 비상이 걸렸다.

네이버는 카카오와 달리 직접 연예기획사 사업을 꾸리고 있진 않지만 각 기획사와 피를 섞으며 생태계를 구축했다. 일찌감치 SM엔터엔 100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해 우군으로 확보한 데 이어 YG엔터에도 투자한 바 있다. 또 네이버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서비스인 제페토에 빅히트(70억원), YG(50억원), JYP(50억원) 등 엔터3사의 투자를 받아 협업하기도 했다.

문제는 네이버가 쌓아둔 공고한 K팝 동맹 전선에서 SM엔터의 이탈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네이버가 1000억원 투자 과정에서 SM엔터와 확약한 플랫폼 통합 계획을 깨고 자사 플랫폼 '브이 라이브(V-live)'를 하이브에 매각하면서 양 사간 감정에 골이 생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입장에선 K팝 시장 통합은 완성했고 이제 드라마 제작 등 다음단계를 준비하려 했는데 갑자기 SM엔터가 카카오와 손을 잡으면서 판이 다 깨질 수 있는 위험에 처한 셈"이라며 "네이버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라도 카카오엔 팔리지 않도록 유도하는 게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웹툰, 웹소설 등 네이버와 카카오의 전장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이번 SM엔터를 둔 양 사의 눈치싸움도 어느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네이버-하이브 진영 대 카카오-SM엔터-NC소프트 진영이 공고화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네이버 입장에선 가장 우려할 구도인 셈이다.

한 국내 증권사 IT 애널리스트는 "네이버와 카카오간 전장은 광고, 쇼핑, 핀테크, 콘텐츠 크게 네 곳"이라며 "물류망이 필요한 쇼핑, 규제 산업인 핀테크와 달리 콘텐츠는 해외 진출이 용이한 산업이기 때문에 서로 명운을 결고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수만 SM회장, 카카오-네이버 난타전 유도전략 통할까이번 이수만 총괄의 지분매각 협상엔 별도의 투자은행(IB)이 고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IB업계에선 혈투를 벌이는 카카오와 네이버를 끌어들여 SM엔터가 짠 판세를 두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애초 적극적으로 인수 협상에 나선 카카오와 달리 네이버는 직접 인수 혹은 투자 의사를 내비치진 않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비공개로 접촉해온 SM엔터가 지분 매각에 대해 공식 부인하지 않고 '미확정'으로 공시하면서 일종의 공개매각으로 선회됐고, 카카오 역시 '미확정'으로 참전 의사를 밝히며 SM엔터가 유도한대로 전선이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이번 거래에 정통한 관계자는 "SM엔터가 이달 초 카카오와 협상이 결렬된 후 별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아오다 갑작스럽게 매각에 대해 부인공시를 안 내겠다고 알려왔다"며 "후보들 입장에선 인수의사가 강하지 않더라도 한 쪽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관심 있다'는 스탠스를 유지해야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이 총괄회장이 연초 하이브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이미 기획사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아는 하이브 내에선 자신의 입지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기획사 운영에 대한 경험이 없는 카카오, 네이버 등 IT 회사에 회사를 팔아 매각 이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매각가를 이끌어 내는 게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