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과 여동생 3명 사이에 촉발됐던 범 LG가 식품업체 아워홈의 경영권 다툼이 세 자매의 승리로 끝났다. 보복운전을 하다가 상대 차량과 운전자에 상해를 입힌 건으로 지난 3일 실형이 선고됐던 '장남' 구본성 부회장은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되고,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가 아워홈의 단독 대표 자리에 올랐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아워홈은 이날 서울 모처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가 제안했던 신규이사 선임안, 보수총액 한도 제한안 등을 통과시켰다.
지분 19.3%를 가지고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던 장녀 구미현 씨가 구 전 대표 손을 잡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결과 구지은(20.67%), 구명진(19.6%) 씨 등의 지분을 합친 세 자매의 지분율은 59.57%를 기록해 무리 없이 경영권을 가져오게 됐다.신규이사 21명 선임안 통과..이사회 장악 구미현 구지은 구명진씨 3인은 이날 주주제안을 통해 선임된 21명의 신규 이사들을 통해 이사회를 장악했다. 세 자매는 주총 직후 곧바로 이사회를 열어 구본성 대표이사 부회장을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하는 안까지 통과시켰다.
그러나 구본성 부회장이 아워홈의 사내이사 자리에서 당장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내이사의 해임은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3분의 2 이상의 지분이 필요한데, 구 부회장의 지분이 38.56%로 3분의 1을 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 자매가 앞으로 아워홈의 경영권을 확보한 후 구 부회장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아워홈의 계열사로 '사보텐' 등 요식업을 운영하고 있는 캘리스코 등의 운영 주체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구지은의 '절치부심'...5년만에 경영권 되찾아아워홈은 앞서 2017년에도 한 차례 '남매의 난'을 겪었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3남 구자학 회장과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딸 이숙희 여사 사이에 둔 네 자녀 중에 원래 경영 수업을 받았던 것은 구지은 전 대표였다.
그러나 2016년 LG그룹의 '장자승계' 원칙을 내세워 오빠 구본성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구지은은 자회사인 캘리스코 대표로 이동했다.
2017년 구지은 전 대표는 구본성 부회장의 전문경영인 선임안에 반대하며 임시주총을 소집했으나 당시에는 장녀 구미현이 구본성 부회장 편에 서면서 실패에 그쳤다. 구 전 대표는 2019년 구본성 부회장의 아들 구재모의 아워홈 사내이사 선임안, 이사 보수 한도 증액안을 반대하며 또 한 차례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이후 아워홈이 캘리스코의 납품을 중단하면서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에 상황이 달라진 것은 장녀가 여동생 쪽으로 편을 바꾼 결과다. 가족 내에서 실형(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구본성 부회장의 자격문제에 대한 논란이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아워홈은 올 들어 정기 주주총회도 개최하지 않았다. 이날 개최된 주총은 구지은 전 대표 측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청하고 법원이 이를 허가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구자학 회장이 장남 대신 3녀 구지은 전 대표를 후계자로 꼽았던 것부터가 경영자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차준호/김종우 기자 chacha@hankyung.com
≪이 기사는 06월04일(09:15)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