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강한 위안화'가 미·중 갈등의 새 불씨 될 것"

입력 2021-06-03 12:26
수정 2021-06-17 00:02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위안화 강세를 잡으려 고심하고 있다.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기 위한 인민은행의 시도들은 미국·중국 간 충돌에 새로운 불씨를 제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미·중은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 무역 분쟁, 대만 문제 등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지난 1년간 중국의 외환보유액 증가폭이 크지 않았지만, 인민은행이 위안화 강세를 억제하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동원하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년간 위안화 강세로 인한 달러 가치 하락폭이 크지 않았는데도, 중국 당국이 인위적인 환율 조작에 나서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기준으로 위안화 가치는 달러당 6.38달러 선을 넘었다.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서 통화가치가 5% 가량 상승하면 사상 최고치 기록을 깰 수 있다. 이미 지난 1년간 상승폭은 12%에 육박한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31일 시중 은행 등 금융기관들에 오는 15일부터 외화예금 지급준비율을 현행 5%에서 7%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외화 지준율이 오르면 그만큼 은행이 중앙은행에 쌓아야 할 금액이 커져 시중 외화 유동성은 줄어들게 된다. 이는 최근 전직 인민은행 관계자가 국영 언론에 "최근의 위안화 강세가 지속 가능하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이후 나온 조치다.

그러나 WSJ는 "인민은행이 위안화 강세를 억누르려는 기색이 역력한 점을 감안할 때 최근 1년 사이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거의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의 무역흑자가 대규모 외환보유액 축적으로 이어졌던 2000년대~2010년대 초반과는 다른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초부터 중국 외환보유액은 달러 기준으로 2.9%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수준의 수출 증가세와 통화 강세 현상을 보인 한국과 대만의 외환보유액이 각각 10.6%와 13.2%씩이나 증가했다는 점과 비교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인민은행이 외환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위안화 가치 절상을 억제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다른 데이터들을 살펴보면 더 복잡해진다. 중국 국제수지에서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4분기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지만 다른 2가지 항목은 급증세를 기록했다. 첫번재는 '기타 투자' 항목으로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투자 등으로 분류되지 않는 거래를 아우른다. 두번재 항목은 '오차 및 누락'이다. 이 두 부문을 합친 규모는 지난해 4분기 2000억달러(약 222조5800억원)를 넘었다. 사상최대 규모였다.

일부 자본유출 항목은 큰 의미가 없다. 단순히 달러화 약세와 위안화 강세 상황을 이용해 달러 빚을 갚은 중국 내국인들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기타 투자' 항목에서 '대출'로 표시된 중국 신규부채는 지난해 1분기 130억달러에서 4분기 마이너스 440억달러로 감소했는데, 이는 대규모 상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 유출의 대부분은 여전히 의심된다고 WSJ는 꼬집었다. 미국 중앙은행 경제학자 출신이자 리서치기업 엑산테데이터의 수석전략가인 알렉스 에트라는 "이 두 부문의 국제수지가 중국 국영은행들의 해외 자산매입 총액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인민은행이 다른 국가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직접 환율을 조정하기 보다 국영은행들을 내세워 통화 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선호해왔다는 설명이다.

WSJ는 "이 같은 움직임이 물밑에서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면 미 재무부의 관심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면서 조만간 무역분쟁에 이은 또 다른 미중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양국 간 정치적 갈등의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환율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국제수지 데이터의 세부사항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