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야구 은퇴' 박용택 "본업은 중계, '노는브로'는 휴가"

입력 2021-06-04 11:25
수정 2021-06-04 11:28


"제가 원래 밝고,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야구선수를 할 땐 못 했어요. 쉬지않고 입담을 펼칠 수 있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사진 촬영이 없던 인터뷰였지만 의상마저 완벽했다. 광택부터 다른 맞춤형 재킷에 날이 살아있는 바지를 입고 등장한 박용택은 "겸손 빼고 모든 걸 다 잘한다"는 자기 소개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완벽한 인터뷰를 보여줬다.

박용택은 2002년 LG트윈스에 입단 후 지난 2020년 은퇴할 때까지 팀의 간판 선수로 활약했고, KBO 역대 최초 통산 2500안타 기록을 달성했다. 전설을 남기고 은퇴한 후 박용택은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동시에 첫 고정 예능프로그램으로 티캐스트 E채널 '노는브로'에 출격하며 맏형으로 프로그램을 이끈다.

'노는브로'에서 박용택은 잠시도 오디오가 쉬지 않는 입담과 동생들을 챙기는 자상함으로 활약 중이다. 뿐만 아니라 미모의 아내와 그를 꼭 빼닮은 딸, 그리고 "공황장애가 와서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고백까지 인간 박용택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왜 '노는브로'였나

박용택이 은퇴한 후 러브콜을 보낸 프로그램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서 자신의 첫 예능프로그램으로 '노는브로'를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일회성으로 화제성을 위해 소비되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노는브로'는 앞서 박세리, 남현희, 곽민정, 정유인, 한유미가 출연해 인기를 모았던 '노는언니'의 스핀오프 격. 박용택은 "'노는언니'를 재밌게 봤고, 주변의 방송쟁이들이 '무조건 하라'고 추천해줬다"면서 출연 이유를 밝혔다.

"전문 방송인 없이 운동하던 사람들끼리만 있으니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게 그 나름대로 재미예요. 촬영 시간과 이동 시간이 길다고 힘들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원정 경기 가면 부산까지 왔다 갔다 했으니까 크게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저희끼리 밥 먹으며 술도 마시고요. 방송보단 놀러 간 거 같아요. 말도 편하게 해요. 다들 운동선수들이다 보니 '*발'은 자연스러운 추임새였거든요. 그런데 기가 막히게 재밌게 편집해 주시더라고요."

박용택은 '노는브로'에서 아내와의 첫 만남부터 딸과 커플룩을 맞춰 입고 놀이공원 데이트를 하는 모습까지 선보였다. 박용택은 "딸이 곧 제주도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 들어간다"며 "아이가 어릴 땐 제가 운동하느라 너무 바빴고, 제가 시간이 되니 아이가 너무 바쁘다"면서 애틋함을 보였다.

사생활 노출이 적었던 선수 시절과 달리 '노는브로'에 출연하며 가족과 사는 집까지 공개하는 것에 "조금 부담은 있었지만, 가족들 모두 허락해줬다"며 "특히 딸이 2013년 MBC '일밤-아빠 어디가'가 유행할 때, 나이대가 비슷했던 아이들이랑 운동선수 아빠들이 같이 1박2일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흑역사를 풀겠다며 의욕을 보였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방송 후 아내랑 딸 모두 제가 어떤지, 프로그램이 어떤진 안보고 자기 외모가 어떻게 나왔는지만 보더라고요.(웃음) 아내는 '왜 이렇게 못생기게 나왔냐'고 하고, 딸은 '아빠랑 너무 똑같이 나왔다'고 하고요. 너무 재밌어요. 아내가 엉뚱하고 성격이 매력적이라 방송을 하면 정말 재밌을 거 같은데, 너무 얼굴이 알려지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이 방해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너무 웃기지 않나요?"

주변 사람들은 '노는브로'를 보며 "너무 모든 걸 다 보여주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했다고. 동생들과 차를 타고 가면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유명 넘버인 '대성당들의 시대'를 열창하는 걸 보며 "육각수 '흥보가 기가막혀'는 언제 부르냐"고 했던 지인들이었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흥부가 기가막혀'를 육각수보다 많이 불렀다고 해요. 그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계속 불렀어요. 조만간 '노는브로'에서도 부르지 않을까요? 하하"
'노는브로'를 통해 도전할 제2의 인생 지난 5월 5일 첫 회가 공개된 후 이제 겨우 방송 한달을 맞이한 '노는브로'다. 하지만 박용택은 전태풍, 김요한, 조준호, 구본길, 김형규 등 후배 선수들에 대한 애정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 빼고 동생들은 다들 방송에 익숙하더라고요. 태풍이나 요한이는 중간중간 여러번 방송에 나왔고, 저 빼고 유튜브 채널도 다 갖고 있어요. 방송에 기본적인 에티튜드가 있는데, 입이 주체가 안돼요.(웃음) 그리고 무슨 자기들이 PD야. '이건 잘리겠다' 이러고요. 그런데 제작진도 개입을 안하세요. 저희끼리 놀러가서 찍는 느낌이에요."

"말하는 걸 좋아했지만, 선수는 경기로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말을 줄였다는 박용택이었다. 그럼에도 LG트윈스를 대표해 20년 동안 인터뷰를 해왔던 만큼 달변가였다. '노는브로'에서도 박용택은 동생들을 챙기고, 질문을 던지며 '진행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박용택은 "제작진에게 따로 요청받은 건 없었다"며 "그냥 제가 진행병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팅을 하거나, 행사를 할 때에도 항상 진행을 했다"며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이라 저희 반 친구들끼리 시립양로원 공연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도 제가 사회를 봤다"며 오랜 진행의 역사를 전했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좋아하지 못했다"는 박용택은 '노는브로'에서 압박감 없이 과정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 운동밖에 몰랐던 선수들이 함께 여행을 가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프로그램의 취지인 만큼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다 재밌을 거 같아요. 노래를 좋아하니까 제대로 배워보고 싶고요. 요리도 좋을 거 같아요. 칼질하는 것만 기초부터 하루종일 하는 건 어떨까요? 쓸 장면이 없어서 제작진이 싫어하려나요? 전 춤만 아니면 좋아요. 춤은 이전에 여러번 시도를 해봤는데 정말, 안되겠더라고요."
'노는브로' 촬영 없을 땐? "야구 해설위원" '노는브로'에 출연 중이긴 하지만 박용택의 본업은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이 아닌 '야구 해설위원'이다. '노는브로'에서 처음 만난 동생들에게 KBS N 해설위원 명함을 줬던 것도 같은 이유다.

'노는브로' 촬영 스케줄이 없을 땐 항상 야구 중계방송 해설 준비에 집중한다. 직접 선수들의 기록과 경기 내용을 체크하면서 해설 내용을 준비하는 탓에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10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요령이 생기고, 조금씩 데이터가 쌓였지만 여전히 "2~3시간 씩은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은퇴 후 야구 해설로 갈 거라고 했어요. 야구를 토론하는 것도, 훈수 두고 잔소리하는 것도 좋아해서 '너는 그 길이 맞을거야'라는 말도 많이 듣고요."

하지만 단순히 야구를 지인들끼리 '수다'로 말하는 것과 '해설'은 명확히 다를 터. 또한 선수가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야구를 보면서 "팬들의 일희일비도 납득이 됐다"면서 웃음을 보였다.

"한마디 한마디가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니 조심스러워요. 제가 한 한마디로 잘못된 이미지도 심어질 수 있어서 머리에서 한번씩 거르면서 말해요."

LG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만큼 친정팀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간다"는 고백도 했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편파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력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LG가 잘할 땐 평정심이 유지가 돼요. 그런데 후배들이 못하면 '아이쿠' 이런게 올라와요. 더 냉정해지고, 더 말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말을 줄여요. LG가 다른 팀이랑 경기할 땐 상대편들의 스토리를 더 많이 준비해주고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