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中 보따리상만 남은 시내면세점 철수…면세업계 '당혹'

입력 2021-06-03 15:33
수정 2021-06-03 15:53

세계 3대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철수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지난달 국내 주요 면세점에 “글로벌 정책상 앞으로 한국에서 공항 면세점 위주로 매장을 운영하겠다”고 통보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시내면세점의 중국 보따리상 의존도가 커지며 루이비통의 ‘고급화’ 전략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명품 시장의 ‘큰손’인 중국에서 자국 면세점 강화 정책을 펼치며 경쟁사인 중국 면세점들이 급성장한 영향도 크다.

지난 2일(현지시간) 글로벌 면세 전문지 무디데이빗리포트는 “루이비통이 한국을 포함한 시내 면세점에서 순차적으로 철수할 것”이라며 “글로벌 전략을 수정해 중국 공항 터미널 등 공항 면세점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면세점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이런 내용을 지난달 국내 면세점들에 전달했다. 다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통보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루이비통 매장을 보유한 면세점은 롯데·신라·신세계 세 곳이다. 롯데(4곳), 신라(2곳), 신세계(1곳) 등 총 7곳의 시내면세점에 루이비통 매장이 있다. 롯데면세점은 서울 소공동 본점과 잠실점, 부산점과 제주점에서 루이비통 대형 매장을 운영한다. 신라면세점은 서울 장충동 지점과 제주점에, 신세계면세점은 서울 명동 본점에 각각 루이비통 매장을 운영 중이다. 루이비통의 철수가 현실이 되면 이 매장들이 모두 문을 닫는다.

루이비통이 공항 면세점에 집중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은 개인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고급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본래 국내 시내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공항 면세점은 한국인이 주 고객인데 코로나19 이후 외국인이 사라졌다”며 “시내면세점에는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방문해 화장품을 쓸어담는 중국 보따리상만 남았기 때문에 루이비통 입장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데이빗리포트에 따르면 루이비통은 개인 여행객들을 공략하는 홍콩 마카오 시내점과 일본 오키나와 매장은 유지한다. 국내에서도 인천공항 제1터미널의 신세계면세점 매장은 그대로 운영하고, 향후 인천 제2터미널에 2호점을 열 계획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자국 면세사업을 키우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내놓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국가면세지구인 하이난의 내국인 면세품 구매 한도를 연간 연간 3만위안(약 511만원)에서 10만위안(약 1705만원)으로 세 배 가량 늘렸다. 따이궁들이 중국 내에서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다. 하이난을 찾은 중국인은 이후 6개월간 온라인으로 면세 혜택도 받게 했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은 연간 매출 66억300만유로(8조9000억원)을 기록해 2019 4위에서 1년 만에 세계 1위로 올랐다. 무디데이빗리포트는 “루이비통은 2025년까지 중국의 모든 광역 지역에 매장을 열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중 한 곳을 잃게 된 면세점 업계는 크게 당황한 분위기다. 루이비통의 철수하면 매출은 물론 한국 면세점의 경쟁력에 직격탄을 맞는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는 제각기 다른 전략을 편다지만 루이비통이 떠나면 시내면세점에 매장을 운영하는 다른 명품 브랜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장 운영과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롯데면세점 소공점을 비롯해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루이비통은 매장이 가장 넓다. 한 주요 면세점 관계자는 “루이비통이 실제로 철수하면 빈 자리에 들어가야 할 매장을 찾기 어렵고, 명품 매장 한 곳당 30~40명이 근무하는 것을 고려하면 브랜드가 고용했던 수십 명의 직원들이 갈 곳을 잃는다”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