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이유 없이 상한가 랠리를 이어가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종목들이 무더기로 급락했다. 6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할 정도로 뜨거웠던 스팩 광풍이 개미들 간 ‘폭탄 떠넘기기’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삼성스팩2호는 16.08% 급락한 7200원에 마감했다. 9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오다 처음으로 하락했다. 이날 SK4호스팩(-29.91%)과 SK6호스팩(-29.89%)은 하한가를 기록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59개의 스팩 가운데 이날 오른 종목은 5개에 불과했다.
스팩은 비상장 기업을 인수할 목적으로 설립된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다. 상장 후 3년 내 합병 기업을 찾아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상장폐지된다. 공모가로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 원금과 예금 이자 수준을 돌려받는다. 모든 스팩의 공모가는 2000원이다.
통상 스팩은 합병 대상이 발표되기 전까지 주가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합병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3~4배까지 오르는 종목이 속출했다. 삼성스팩4호가 대표적이다. 이 종목은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주가가 1만원을 넘어섰다.
다른 스팩도 마찬가지다. SK증권에 따르면 59개 스팩의 지난 5월 한 달간 수익률은 평균 35.5%를 기록했다. 1~4월 누적 수익률인 6.9%의 5배가 넘는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합병과 관련된 특별한 이슈가 없음에도 상승하는 것은 분명한 과열”이라고 말했다.
제로금리가 만들어낸 유례 없는 유동성이 스팩 광풍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암호화폐가 급락하고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갇히자 상대적으로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스팩으로 투자금이 몰렸다는 것이다. 대부분 스팩의 시가총액은 100억원 내외 수준이다.
스팩 거품이 꺼질 경우 개인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볼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달간 스팩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개미들이다. 한 달 만에 주가가 4배 가까이 올랐던 삼성스팩2호는 개인들이 12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기관은 10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한 달간의 스팩 광풍이 폭탄 돌리기로 끝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가가 이유 없이 급등한 상태에서 기존 투자자들은 물량을 떠넘기고 탈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가가 줄줄이 하락한 게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15개 스팩이 10% 이상 낙폭을 보였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삼성스팩4호에 집중돼 있다. 이 종목은 삼성그룹 비상장 회사와 합병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며 열흘 만에 5배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현저한 시황 변동과 관련해 별도로 공시할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공시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