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31일(08:1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존 건물에 가치를 더하는 '밸류에드(Value-added) 전략은 많이 보편화됐지만 대상은 아직까지 한정돼 있습니다. 그동안 외면됐던 지방과 상권이 죽은 명동 부동산에 가치를 더하면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단법인 서울부동산포럼(회장 왕정한)이 27일 개최한 세미나에서 강연을 맡은 강정구 GRE파트너스 대표는 '밸류에드' 전략은 경쟁이 치열한 서울 도심 오피스빌딩보다는 외면받고 있는 자산에 더 큰 효율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투자전략 중 하나인 밸류에드 투자는 건물을 매입해 공실률을 낮추거나, 임대료를 높이거나, 우량임차인으로 변경하거나, 건물 구조를 변경해 부동산의 자산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이다.
"잘 만든 지방 부동산, 서울 부럽지 않다"
GRE파트너스는 지난 2017년 설립된 국내 최초 리테일 특화 부동산 자산운용사다. 오래된 오피스건물을 리모델링과 저층부 리테일 용도전환을 통해 가치를 더하는 밸류에드 전략으로 투자 부동산을 운용하고 있다.
강 대표는 GRE파트너스가 최근 NH아문디자산운용에 매각한 대구 반월스퀘어(옛 덕산빌딩)를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이 건물은 1996년 준공된 지하 7층, 지상 26층, 연면적 8만2672㎡ 규모의 대형 오피스빌딩이다. 대구지하철 1·2호선 반월당역과 연결돼 있어 입지적 장점을 갖췄다. GRE파트너스는 2018년 이 건물을 사들여 지상 5층까지 리테일 공간으로 바꿨다. 강 대표는 "지방 부동산을 살 때 원칙은 그 도시서 가장 좋은 건물을 산다는 것"이라며 "서울의 명동, 강남같은 입지인데 오피스빌딩으로 운영하는 것보다 임대료를 더 받을 수 있는 리테일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반월스퀘어는 리테일로 운영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대구에서는 4만9500㎡ 이상 가는 리테일 공간을 찾기 어려웠지만, 반월몰(반월스퀘어의 리테일)은 지하1층~지상5층까지가 8만2500㎡에 달했다. 일반 리테일보다 좋은 점은 위에 오피스 상주 인구가 400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리모델링을 하며 반월몰의 외관을 모두 통창으로 바꿔 백화점같은 답답함도 없앴다.
GRE파트너스는 단순 리테일로만 용도 변경을 하지 않았다. 3~5층에 바닥 면적의 25%를 비워 만든 대형 공간(반달광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대학 졸업전시회, 음악 연주회, 그림 전시회 등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강 대표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공간을 비운 게 손실일 수 있지만, 실내 문화공간을 통해 반월스퀘어의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라면서 "기업들의 팝업 스토어, 신제품 전시, 플리마켓 등 화제성도 되고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반월스퀘어를 찾는 인구도 늘고 있다.
GRE파트너스는 반월스퀘어 매각을 위한 전략도 세웠다. 매수희망자에게 반월스퀘어의 추가 밸류에드 가능성에 대해 소개했다. 삼성생명의 마스터리스가 끝나면 그 공간을 병원, 의원으로 채워 대구의 대표 클리닉타운으로 만들거나 오피스텔이나 호텔 등 주거 용도로 변경하면 더 높은 임대료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반월스퀘어의 4~5층 일부는 차병원이 입점해 있다. 강 대표는 "앞으로의 전략까지 세워 매각 패키지로 제시했다"면서 "지방 부동산을 팔기가 쉽지 않다지만 이런 전략이 있기 때문에 팔 수 있었다"고 전했다. GRE파트너스는 이런 밸류에드 전략으로 반월스퀘어를 1130억원에 매입해 3년만에 2000억원에 팔 수 있었다. 연평균 수익률만 30%를 넘는다.
강 대표는 이번 매각이 좋은 가격에 판 것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이 지방을 주목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지방 부동산은 사봤자 공실 채우기도 쉽지 않고, 매각 차익도 높지 않아 '계륵'같은 존재였다"면서 "이번에 매각이 완료되면서 기관 투자가들 사이에서 잘 만들어진 지방 부동산이 공격적인 수익률을 내기에 적격인 부동산이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전했다.
제대로 된 건물 리모델링이 상권을 만든다
지난해 매입한 명동 화이자 건물은 GRE파트너스의 새로운 시도다. 명동 상권은 한때 서울 3대 상권이자 전국에서 가장 땅값 비싼 곳으로 꼽히지만 코로나19 타격으로 관광객이 떠나면서 유령 거리가 됐다. 그러나 강 대표는 명동만큼 저평가된 상권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동은 서울의 중심인데다 남산이라는 자연가치를 갖춘 곳"이라며 "이미 성장이 이뤄진 홍대, 강남에 비해 미래 성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GRE파트너스는 화이자 건물을 시작으로 명동 상권을 남산쪽으로 확장시키고, 젊은 층이 몰리는 '핫플레이스'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화이자 건물은 화이자제약이 2023년 5월까지 임차하기로 계약돼 있다. 임차기간 종료 후 리테일 시설로 리모델링 및 용도변견을 할 계획이다. 강 대표는 "과거 은행, 호텔 뿐이던 홍대 대로변이 원더플레이스, 카카오 프랜즈 등 플래그쉽 스토어가 들어오면서 골목길에서 대로변으로 상권이 확장됐다"면서 "명동도 골목길에서 벗어나 대로변과 남산쪽 골목으로 상권을 확장시킨다면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명동 마을 만들기'라는 테마를 제시했다. 독특한 임차인이나 주변 건물주에게 손님을 끌어올 수 있는 MD전략을 설명하고 적극 지원해줘 마을 전체가 발전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기존의 부동산펀드는 사고팔며 건물의 가치가 높아졌을 때 건물주만 이익을 본다"면서 "실제 건물의 가치는 임차인이 만드는 만큼 임차인과 건물주, 운용사가 상생할 수 있고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자 한다"고 전했다.
서울부동산포럼은 2003년 11월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왕정한 건축사사무소 아라그룹 회장이 6대 회장을 맡고 있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 약 200명이 소속돼 있으며 매월 부동산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들과 부동산업계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자산운용사, 증권사 관련 담당자들도 가입해 활동 중이다.
윤아영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