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공식화한 1일 기재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기재부에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8월까지인 내년 예산안 심의에도 바빠 추경까지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편성된 다섯 차례의 추경을 살펴볼 때 이번 추경과 재난지원금 지급 여부 역시 거대 여당의 뜻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바뀌는 기재부 기류
5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기재부는 지난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부정적이었다. “4차 재난지원금이 핵심인 올해 1차 추경도 다 집행하지 못했다”는 언급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와 여당이 추가 재난지원금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자 분위기가 바뀌는 모습이다. “여당이 요청하면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도 지난달 28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브리핑에서 추경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그간 ‘선별 지급’을 주장했으나 이번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계속해서 말을 바꿔 ‘홍두사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기재부는 세금이 많이 걷히고 있어 여력이 있다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논리를 아직 반박하지 않고 있다. 올해 정부는 1분기 88조5000억원의 세금을 거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조원 더 징수했다. 올해 초 예상한 282조8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300조원 이상의 국세수입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큰 폭으로 증가한 추가 세수를 활용한 추가 재정 투입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발언과도 연결된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유력한 재난지원금 지급 시점으로 9월 초중순을 꼽는 목소리도 있다. 9월 9일 민주당 대선 후보가 선출되는 점과 9월 21일 추석 연휴 등을 감안한 것이다. 백신 접종률이 70%에 이르러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불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3차 추경과 마찬가지로 6월에 편성해 7월 초 국회를 통과하는 속전속결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6월 중순으로 예정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 때 재난지원금 지급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랏빚 1000조원 육박할 듯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게 되면 지난해 5월과 마찬가지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등 여권 관계자들이 코로나19로 고통받았던 것에 대한 위로금 혹은 ‘집단면역 격려금’ 성격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이럴 경우 재난지원금 규모는 지난해 5월 1차 때의 14조3000억원을 웃돌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민주당이 거론하고 있는 자영업자 손실보상까지 감안하면 사상 최대 추경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최대 추경은 지난해 3차 때의 35조1000억원이었다.
문제는 올해 2차 추경(5차 재난지원금 포함)이 현실화하면 국가의 재정건전성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네 차례 추경을 집행하면서 급격히 불어난 국가채무가 더욱 늘어 올해 말 1000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3월 1차 추경을 반영한 올해 말 국가채무는 965조9000억원으로 예상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2000억원에서 300조원 넘게 불어났다. 기초 체력이 이미 흔들린 상태로 분석된다.
초과 세수를 감안하더라도 5차 재난지원금 재원 상당 부분은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원금을 개인별로 지급하거나, 각종 일자리 사업이 추경에 포함되면 초과 세수 이상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가채무는 올 연말 1000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8.2%로 전망된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50%를 넘볼 것으로 예측된다.
내년 이후 재정건전성이 계속 악화한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의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1차 추경을 반영한 2024년 국가채무 비율은 59.7%로 전망됐다. 2차 추경으로 국가채무가 6조원 이상 늘면 2024년 사상 처음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어서게 된다. 이렇게 불어난 나랏빚은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만큼 재정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며 “초과 세수는 내년 국가채무 비율과 적자 비율 증가폭을 낮추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재정준칙 도입이 늦어지면 국가 신용등급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경목/강진규/김소현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