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행 이민’을 쉽고 간편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민제도를 손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의 전문직 취업비자(H-1B) 취득을 손쉽게 하는 동시에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외국 기업인을 위한 이민 비자도 신설할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까다로워진 이민제도를 개편해 합법적 이민을 늘리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국토안보부가 작성한 46쪽 분량의 ‘합법적 이민 시스템에 대한 신뢰 복원 계획’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보고서는 7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외국인 중 고숙련 전문직, 인신매매 피해자, 미국인의 해외 거주 가족, 캐나다 출생 북미 원주민, 난민, 망명 신청자, 농장 근로자의 미국 이주를 돕는 방안이 담겼다.
바이든 행정부는 화상 인터뷰와 전자서류 제출을 확대하고 이민 신청자가 내야 하는 증거 서류를 줄일 계획이다. 온라인 서류 접수는 수수료를 낮출 방침이다. 이민 신청 처리 속도를 높이고 이민 신청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코로나19 사태를 핑계로 외국인에 대한 취업비자 신규 발급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미국 이민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멕시코 남부 국경지대 등을 통한 불법 이민뿐 아니라 전문직 취업을 비롯한 합법 이민까지 제한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이민 제한 조치가 일부 풀리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민을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민 신청 및 처리 절차를 쉽고 간편하게 바꾸려는 배경이다.
주목되는 건 전문직과 기업인에 대한 수혜 확대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는 기존 H-1B 비자를 통한 외국인의 (이민) 기회를 복원하는 것뿐 아니라 사업을 시작하고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길 원하는 외국 기업인을 위한 새로운 (이민) 경로도 마련하려 한다”고 전했다. 전문직의 취업 이민을 쉽게 하고 기업인 이민을 신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구상이 전문직 비자 상한 확대로 이어질지도 관심이다. 미국의 전문직 비자 발급 건수는 현재 연간 8만5000명으로 제한돼 있다. 반면 올해 회계연도(2020년 10월~2021년 9월) 신청자가 27만5000명에 달하는 등 전문직 비자는 만성적인 신청 초과 상태다. 전문직 비자 상한선은 미 의회가 정했다. 이 때문에 상한선을 높이려면 의회를 움직여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전문직 비자제도 개편은 한국인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이민국에 따르면 2001~2015 회계연도 전문직 비자 취득자 중 한국인은 4만9302명(2.8%)으로 인도, 중국, 캐나다, 필리핀 국적자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았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민 개혁이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공화당과 보수진영이 그동안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민 확대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반(反)이민 정책을 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패하긴 했지만 보수 성향 미국인 사이에선 ‘반이민 정서’가 여전히 팽배하다.
NYT는 바이든 행정부가 까다로운 입법 절차를 피하기 위해 행정명령 등을 통해 이민 개혁안을 관철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