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벤처기업인 1호, 한국 PC의 아버지, 초고속인터넷의 선구자….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사진)에게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 15년 동안은 ‘인성교육 전문가’이자 유학문화 연구단체인 박약회(博約會) 회장으로 활동한 날이 더 많다. 구순(九旬)이 가까운 나이에도 직접 현장 강의를 위해 전국을 다니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의 선구자였던 그가 인성교육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이용태 박약회 회장은 “인성교육은 흔히 입에 올리면서도 누구 하나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다”며 “훌륭한 기술도 좋지만, 훌륭한 사람을 만든다는 일에 매료됐다”고 했다.
논어의 ‘박문약례’(博文約禮: 널리 학문을 닦고 예를 지킴)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따온 박약회는 1987년 설립됐다. 이 유교문화 발전을 위한 유학자들의 모임에서 시작했다. 현재는 군인·학생들을 위한 인성교육 사업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현대식 향약을 실천하는 운동도 하고 있다. 그동안 이 단체의 인성교육을 수료한 인원만 100만 명이 넘는다.
이 회장은 “인성교육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역지사지’라는 교훈 하나를 가르칠 때도 그 교훈을 담은 글 수십 편을 6개월 동안 날마다 하나씩 읽히고, 하루 하나씩 실천사항을 적어내도록 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 방법론을 체계화해 ‘HPM(Habitation Practice Model)’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이 회장이 박약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삼보컴퓨터가 한창 커가던 1994년 무렵. 초대 회장인 김호길 KAIST 총장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리를 이어받았다. 지인들의 권유로 회장직을 수락했지만 바쁜 경영업무 탓에 형식적으로만 유지했다. 이 회장은 “흔히 유교에 대해 갖는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IT 전문가였던 나를 회장으로 추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성교육에 전념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삼보컴퓨터에서 물러나면서부터다. 2005년 사업 악화로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이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후 삼보컴퓨터는 주인이 수차례 바뀌다가 2012년 이 회장 차남인 이홍선 삼보컴퓨터 대표가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개인재산도 압류되고 파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이 회장은 그럼에도 인성교육을 놓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한 번은 군부대에서 강연을 했는데, 나중에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무료하기만 한 군 생활이었는데 전역 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찾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진심 어린 편지를 받을 때마다 늘 힘이 납니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정보통신 특별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89년을 살아오면서 정부로부터 받은 상으로는 처음이다. 이 회장은 “IT 분야의 공로를 정부가 드디어 인정해줘서 기쁘다”며 “100세가 될 때까지 인성교육을 현장에서 꾸준히 하고 싶다”고 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