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회사는 금소법에 따라 투자상품에 가입하는 소비자에게 약관과 계약서, 투자설명서 등을 제공해야 하는데 대부분을 종이 출력물 형태로 교부하고 있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 창구에서 피델리티글로벌배당인컴펀드에 가입할 때 챙겨야 할 투자설명서가 A4지 84장에 달한다. 여기에 투자정보확인서, 결과표 사본 등 추가 서류 9장을 더하면 소책자 한 권 분량인 93장의 서류를 쥐게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 대부분이 받은 서류를 창구에 두고 간다”며 “‘누굴 바보로 아느냐’며 항의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했다.
은행 창구 직원들은 금소법 시행 전보다 최소 50% 이상 종이 서류가 늘었다고 설명한다. 투자상품의 난도가 높아질수록 서류가 많아진다. 소비자가 상품 가입 후 마음이 바뀌어 청약철회권을 행사하면 가입 때 교부했던 만큼의 서류를 다시 출력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금소법으로 늘어난 종이 출력물이 ESG 경영, 비대면 금융 트렌드와 동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국내 은행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페이퍼리스(종이 없는 업무환경)를 선언하고 있지만 금소법 관련 출력물이 늘어나면서 의미가 퇴색했다는 설명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