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28일(현지시간) 10년간 3조6000억달러(약 4000조원)에 달하는 ‘부자 증세’에 시동을 걸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총 4조달러 이상의 인프라 투자와 교육·복지 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핵심 타깃은 대기업과 고소득층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하는데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어 원안대로 의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기업·고소득층 겨냥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가 발표한 10년간 3조6000억달러 증세 방안은 법인세율 인상(21%→28%) 8550억달러,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15%) 5340억달러, 기업 탈세 방지 3900억달러 등 기업 관련 증세가 1조7790억달러에 이른다. 여기에 국세청 세무조사 강화를 통한 증세도 7790억달러에 달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상당수도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37%→39.6%)과 자본이득세 인상을 통한 증세는 6910억달러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대상은 연간 부부합산 소득 50만9300달러 이상, 개인 소득 45만2700달러 이상인 고소득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때 개인 기준 연소득 40만달러 이상을 대상으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재무부 발표는 이보다 대상을 좁힌 것이다.
자본이득세는 부동산, 주식, 채권 등의 매각 차익에 붙는 세금이다. 현재는 1년 이상 보유한 자산을 팔 경우 투자 수익에 최대 20%의 연방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100만달러 이상 투자 수익에 대해선 이 세율을 39.6%로 올릴 계획이다.
이 같은 대대적 증세 방안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증세 이후 28년 만에 추진되는 것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8년간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와 10년 동안 1조8000억달러 규모의 교육·복지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로, 교량, 철도 같은 전통적 인프라 개선 외에 반도체 생산 확대, 전기자동차 인프라 확충 등 미래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초대형 인프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또 ‘미국 가족계획’이란 이름으로 취학 전 아동 및 커뮤니티칼리지(전문대) 무상교육 등 교육·복지 지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을 줄이려 한다”고 전했다.
재무부는 증세 계획이 원안대로 실행되면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약 4조달러의 인프라 및 교육·복지 프로그램 재원을 15년에 걸쳐 세수로 메울 수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및 교육·복지 지출 구상을 반영한 6조100억달러 규모의 내년 회계연도(2021년 10월~2022년 9월) 예산안을 의회에 제안했다. 이 중 법적 의무지출을 뺀 정부 재량 예산은 1조5200억달러다. 코로나19 예산을 제외하면 올해 재량 예산보다 8.4% 많다. 내년도 재량 예산을 부처별로 보면 교육부가 2980억달러로 올해보다 41% 늘어나 증가율이 가장 높다. 이어 상무부가 114억달러로 28%, 보건복지부가 1317억달러로 24% 늘어난다. 반면 국방부 예산은 7150억달러로 1.6% 증가에 그친다. 공화당 “경제 옥죌 것”바이든 행정부의 지출 구상과 증세 계획이 그대로 관철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공화당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이란 이유로 증세에 반대하고 있다. 대규모 지출 계획에 대해서도 재정난을 근거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상원 금융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마이크 크레이포 의원은 이날 성명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증세안에 대해 “규제와 관료주의로 경제를 옥죌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은 전날 9280억달러 규모의 자체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역제안했다. 도로, 교량 등 전통적 인프라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2조3000억달러의 40% 수준이다.
민주당의 ‘중도파’ 조 맨친 상원의원이 법인세율을 28%로 올리는 데 반대하며 25% 인상안을 지지하는 등 바이든 대통령 구상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점도 변수다. 민주당은 현재 상원에서 공화당과 각각 50석을 양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 한 명이라도 이탈 표가 나오면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의회 논의 과정에서 증세 폭과 지출 규모를 조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