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만 되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던 때가 있었다. 1990~2000년대 얘기다. 태조 왕건, 대장금, 모래시계 등 시청률 50%가 넘는 '국민 드라마'가 수두룩했다. "저녁에 리모컨 들고 있는 사람이 그 집의 실세"라는 말도 나왔다.
'본방사수'라는 단어가 잊혀지기 시작한 건 2010년대 들어서다. TV 편성시간을 기다리는 대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보려는 수요가 커진 것.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떠오르자 TV업계는 고민에 빠졌다."더이상 정규방송은 보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에게 TV의 쓸모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TV업계가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유료방송 서비스를 해지하는 '코드 커팅' 현상 때문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업체들은 자체 TV 콘텐츠의 프로그램 수와 진출 국을 늘리고 있다.
TV채널과 달리 스트리밍 서비스는 굳이 TV로 보지 않아도 된다.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TV로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TV 전체들이 운영하는 자체 콘텐츠는 별도로 유료 서비스에 가입할 필요 없이 TV를 구입해 인터넷에 연결하기만 하면 바로 시청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비디오서비스인 '삼성 TV 플러스'를 최근 포르투갈에 출시했다. 14개였던 삼성 TV 플러스 진출국 수를 올해 23개로 늘릴 계획이다. 최근에는 국내 디지털 콘텐츠 기업인 '뉴아이디'와 협업해 '맛있는 녀석들', '미니특공대 TV'등을 국내 서비스에 추가했다.
이외에도 올초 건강관리 앱인 '삼성헬스'를 TV에 추가했다. TV를 보면서 운동을 따라할 수 있는 기능이다. 사용자의 동작 정확도를 체크해 자세를 잡아주고, 소모된 칼로리 등 결과를 알려준다.
LG전자는 최근 국내 ‘LG 채널’서비스에 CJ ENM의 30개 채널을 추가했다. 국내에서 LG TV로 시청할 수 있는 무료 채널은 112개에 달한다. 지난 2018년과 비교하면 국내 소비자들이 LG채널에 접속하는 횟수는 3배 이상 뛰었다. LG 채널 전체 시청 시간도 2.5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같은 변화로 인해 TV가 전자기기를 넘어선 미디어 플랫폼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DMC미디어는 지난 2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시청자들의 케이블 TV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스마트TV 보급이 확산하면서 기존 TV업체가 주요 광고사업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TV업체들의 자체 콘텐츠를 즐기는 소비자가 늘어날 수록 광고 주도권이 채널 사업자에서 TV제조업체로 넘어갈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