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지도력(指導力)이 아니고 지도력(地圖力)이다! 제목부터 다소 굴절된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결론은 이렇다. 지도력(地圖力)이 결국 지도력(指導力)으로 환원된다는 것. 세계 100여 개 나라를 답사한 저자는 “세계사를 바꾸고 글로벌 경제를 주름잡아온 리더들의 책상 위엔 하나같이 지도가 있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은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코로나19 이후의 세상까지 ‘권력의 지도, 부의 지도, 미래의 지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흥미롭게 추적한 책이다. 코로나19 탈출에 가장 앞선 영국과 이스라엘부터 살펴보자. 두 나라의 공통점은 현장 중심의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영국은 1800년대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지도를 통해 해법을 찾았고, 이스라엘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빅 트립’으로 세계 무대를 미리 체험하며 지리적 감각을 익혔다.
영국을 좀 더 들여다보면, 전 세계로 영토를 확장한 대영제국의 심장은 뭐니 뭐니 해도 영국왕립지리학회였다. 거기에는 식민통치에 필요한 지리 정보가 늘 가득했다고 한다. 상류층 자제일수록 고생스러운 험지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윌리엄 왕세손은 중미 정글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칠레의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는 ‘2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자동차로 2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있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다. ‘실리콘밸리의 현자’로 불리는 유진 클라이너가 제시한 법칙과도 연결되는데, ‘말이 아니라 기수를 보고 베팅하라’는 것. 투자자는 창업자와 자주 만나고 가까이에서 기업의 성장과정을 볼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가 딸들에게 생일 선물로 지구본을 사준 이유가 뭘까. 잭 웰치, 워런 버핏, 스티브 잡스, 팀 쿡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모두 어린 시절에 신문배달을 하며 ‘스트리트 스마트’와 비즈니스 감각을 익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 때부터 해외 현지법인의 정보 수집을 강조했다. 도쿄와 실리콘밸리에 정보센터를 설립하고 10년이 넘는 조사와 연구 끝에 1984년 독자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역전문가 제도’는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주효한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찍이 ‘공간 마케팅’에 눈을 뜬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경우도 특기할 만하다. 직원들이 어떤 풍경을 보고 일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한 그는 ‘인사이트 트립’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1주일 동안 여행을 떠나 세상을 관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도록 직원들에게 기회를 줬다. 배달의민족은 사무실을 세 번 이사했는데, 그때마다 김봉진 대표가 실내공간을 직접 디자인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주도했다. 창밖의 풍경이 구성원의 사고방식 및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글맵 혁명 덕분에 탄생한 포켓몬고는 어떤가. 2016년의 놀라운 사건으로 기억되는 포켓몬고는 주변의 모든 대상을 공간정보와 접목한 증강현실 기술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첨단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넷플릭스가 미국의 우편배달 시스템에 의존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지도에 근거해 공간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함으로써 유통센터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고 한다. ‘고충지도’를 만들어 조치가 필요한 현장을 즉시 파악하고 새로운 통찰을 공유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같은 명품기업들과 모든 매장을 ‘AI 팩토리’로 변신시킨 월마트, K스타벅스의 공간 혁명, ‘한국의 김기스칸’으로 불린 김우중…. 이 수많은 사례의 밑바탕에도 지리적 상상력이 깔려 있음을 책은 알려준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도 세계지도를 정확하게 읽어낸 사람이 주도할 것임은 분명하다. 위기 속에서 역전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당장 지구본을 돌려보자. 지리적 상상력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테니까.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어디냐는 물음에 러시아나 캐나다를 떠올렸다면 지리적 상상력을 좀 더 업데이트하길 바란다. 유튜브, 구글, 혹은 메타버스라고 답할 때까지.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