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이 평생 받는 복지 순(純)수혜 금액이 고소득층의 50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수혜 금액이란 전체 복지 혜택 금액에서 세금 부담액을 뺀 것이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은 저소득층보다 현저히 높은데 복지 수혜 금액은 적어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조세와 복지 제도의 목적에 따라 소득 재분배가 이뤄지는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고소득층으로의 과도한 세금 편중은 진정한 의미의 조세 정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저소득층 평생 복지 혜택 연평균 447만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생애소득에 기초한 조세재정정책의 수혜와 부담추정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오종현 조세연 연구위원은 2017년 재정패널조사를 기반으로 25세부터 85세까지 가구주의 생애소득을 추정한 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두 가지 세금 부담과 기초연금, 아동수당, 의료 수혜, 교육 수혜 등 네 종류의 국가 복지 혜택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도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하위 1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는 연평균 697만5000원의 시장소득을 벌어 863만1000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 폭은 복지제도 등이 감당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년 기초연금을 136만8000원 수령하는 것을 비롯해 447만4000원의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들 계층의 소득세 부담은 연간 1만3000원에 그쳤다. 소비에 따른 부가가치세는 71만4000원이었다. 복지 혜택에서 세금 부담액을 뺀 복지 순수혜 금액은 374만7000원이었다.
이를 생애소득으로 환산하면 1분위 가구는 평생 소득세 79만원과 부가가치세 4355만원을 내고, 2억7291만원에 해당하는 복지 혜택을 받아가는 셈이다. 고소득층 복지 수혜, 저소득층의 1.8%이는 고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상위 10% 가구와 큰 차이가 난다. 10분위 가구는 평생 연평균 7058만원을 버는 것으로 추정됐다. 소득세로는 연간 220만2000원을, 부가가치세로는 140만9000원을 냈다. 평생 2억2027만원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반면 복지 혜택은 368만3000원에 그쳤다. 의료와 교육으로 인한 수혜 금액은 저소득층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지만 현금 복지에 해당하는 기초연금 수령액은 연간 41만5000원으로 저소득층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소득층의 복지 순수혜 금액은 7만1000원으로 저소득층의 1.8%에 그쳤다.
중산층으로 볼 수 있는 7분위(상위 30~40%)는 연간 3022만원을 벌고, 135만9000원을 세금으로 내는 것으로 추정됐다. 복지 순수혜 금액은 309만4000원이었다.
조세연은 세금 부담과 복지 순수혜 금액의 차이는 조세와 재정정책의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걷어 저소득층을 지원함으로써 사회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논리다. 조세연은 또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과 아동이 있는 가구에 주는 아동수당 등이 특정 연령대를 집중 지원하는 제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생애 자료를 통해 본 정책의 재분배 효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크다고 밝혔다. “과도한 세 부담 편중은 큰 문제”전문가들은 조세제도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조세 부담이 고소득층에만 과도하게 몰리고 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고소득자를 겨냥한 ‘핀셋 증세’가 계속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고소득자들이 조세 저항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소득자가 대체적으로 소득세를 하나도 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고소득자의 세금 편중 현상은 매우 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세금은 많이 내는데 혜택은 별로 없는 고소득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조세연의 연구 결과에서도 세금 부담액과 복지 혜택 금액의 차이로 계산되는 복지 순수혜 금액이 9분위까지 200만원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10분위만 7만원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홍 교수는 “저소득자도 세금을 어느 정도 부담하면서 복지 혜택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조세와 복지정책이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세연이 이번 연구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실업급여 등 다른 수많은 복지정책을 제외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 제도들은 저소득층에 더욱 집중적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소득계층 간 복지 순수혜 격차가 실제로는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