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비트코인에 내재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주요 국제기구 수장의 발언을 인용했다고 설명했지만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위는 지난 3월 게재한 '가상자산 거래를 하는 고객은 가상자산사업자의 신고 상황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가상자산 거래 관련 유의사항'이란 제목으로 25일 다시 한 번 홈페이지 팝업 메시지로 띄웠다. 그러면서 "가상자산은 화폐가 아니고 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 주요 국제기구 및 중앙은행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업데이트'도 이뤄졌다. 해당 공지에는 비트코인에 내재가치가 없다는 엔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최근 발언이 포함됐다. "가상자산은 매우 변동성이 크고 자산이라기보다는 투기의 대상"이라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의 의장 발언도 더해졌다.
금융위가 부각한 이들 발언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투기성이 강한, 내재가치 없는 자산"이라며 가상자산 투자를 '잘못된 길'로 평가해 논란을 빚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다.
은 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가 지난주 20만명을 넘어선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주요 국제기구들도 유사한 입장을 내놓은 만큼 은 위원장의 발언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옹호인 셈. 은 위원장은 이날도 '코리아핀테크위크' 개막 행사에 참석해 "암호화폐 가격변동은 우리가 보호할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금융위가 '입맛에 맞는' 발언만 취사선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금리를 좌우하는 파월 의장은 금융위가 인용한 것과 같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대해 "변동성이 크고 투기의 대상"이라고 지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달러의 대체재가 되긴 어렵지만 금의 대체재는 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가상자산은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기 어려우며, 달러가 아닌 금과 경쟁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금융위는 이 발언은 인용하지 않았다.
파월 의장 외에도 많은 석학들은 비트코인이 금과 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제연합(UN) 산하 금융기관 세계은행 전 수석 경제학자인 로렌스 서머스는 25일(현지시간) 파월 의장과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내놨다.
그는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투자처를 찾기 위해 금을 매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트코인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면서 "가상자산이 화폐처럼 주요 교환 수단으로 발전하리라 보지는 않지만, 인터넷 상거래 공간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캐플런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지난달 "현재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며 투자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을 인정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 역시 "비트코인을 달러보다 금의 경쟁 상대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네덜란드 라보뱅크는 보고서를 통해 "중앙은행은 통제할 수 없는 유형의 대안화폐가 자신의 국내 통화정책 통제권을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으로선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인정할 순 없지만, 금과 같은 가치 저장 수단으로는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금융위의 공지문을 두고 가상자산 업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장 정부부처에서도 가상자산 거래소로 이직하고자 퇴사하는 경우가 나오지 않았나. 기관 투자자도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가치가 없다고 매도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