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억원대 출금 정지 사태로 ‘먹튀’ 논란을 일으킨 중소형 암호화폐거래소 비트소닉 피해자들이 경찰에 단체 고소장을 냈다. 소송인단 대부분이 30~5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여유자금이나 은행 대출을 활용해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1억5000만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 시장을 겁 없는 1020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투자자의 놀이터로만 보고 대책 마련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 대부분이 30~50대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비트소닉 출금 정지 사태로 피해를 본 곽모씨(33) 등 38명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대건은 이날 서울경찰청에 단체 고소장을 냈다. 비트소닉 대표 A씨는 지난 2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사기 등 혐의로 입건됐다. A씨는 1월부터 비트소닉 이용자들의 출금 요청을 거부해 163억원가량의 금전적 피해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잠적 상태다. 소송 참여자들의 피해 규모는 70억원대다.
이들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송인단 대부분이 30~50대였다. 30대가 44.7%(17명)로 가장 많았고 이어 40대(34.2%, 13명) 50대(18.4%, 7명) 순이었다. 20대는 0.03%(1명)에 그쳤고, 10대는 한 명도 없었다. 피해 규모는 적게는 500만원에서 최대 1억5000만원으로, 대부분 1억원 미만(81.5%)이었다.
투자금 출처를 보면 52.6%(20명)는 개인 여유자금으로 투자했고, 은행 등 1금융권에서 대출한 경우가 34.2%(13명)였다. 은행 대출 이자는 연 2~3%대였다. 지인이나 친인척에게 빌려 투자한 이는 7.9%(3명)였고, 카드론 등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쓴 비중은 5.3%(2명)에 그쳤다. 피해자모임 간사를 맡고 있는 곽씨는 “2017년부터 소액씩 여유자금으로 암호화폐에 분산 투자를 해왔고, 비트소닉을 이용한 건 다른 곳보다 수수료가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비트소닉은 2018년 업비트의 거래량을 넘어설 정도로 많이 이용하던 곳”이라며 “다른 거래소도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법 정비 안 되니 ‘법의 보호’ 어려워소송인단의 면면은 암호화폐 관련 피해가 비단 젊은 층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법의 구제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탓이다. 앞서 진행된 소송 등에서도 피해자가 피해액을 곧바로 돌려받은 사례는 드물다.
피해자 곽씨는 올초 투자금이 묶이자 2월 서울동부지방법원에 가상자산 출금 제한 금지를 풀어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당시 법원은 “출금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이 신청을 인용했다. 그러나 강제집행 결정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무자가 가처분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것이 강하게 의심되고 위법 상태를 신속하게 제거할 필요성이 소명돼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재차 법원에 강제집행 신청을 냈으나 판단이 미뤄지면서 투자금은 아직도 묶여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가상자산에 대한 법령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암호화폐를 법적 재화로 볼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며 “법원이 강제집행 명령을 내린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등도 구체화돼야 피해 구제가 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또 △대물 변제 시 방법과 절차 △회계 처리 방식(무형자산인지 재고자산인지) △자산으로 볼 경우 공정가치 산정 방식 △과세 시 원천 징수 방식 △법인이 암호화폐 취득 및 처분 시 법인세 납부 대상인지 여부 등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윤창현 의원은 “이번 소송은 암호화폐 투자 피해가 1020세대뿐 아니라 평범한 중장년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암호화폐 범죄에 단호한 철퇴를 내릴 수 있도록 새로운 법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