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BNK자산운용 대표는 1년에 두 번 전 직원과 면담을 한다. 면담에서 이 대표가 빼놓지 않는 질문이 있다. “30년 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이냐”다. 처음엔 우물쭈물했던 직원들도 이제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이 대표는 단순한 상사가 아니라 인생의 멘토다.
BNK자산운용은 4년 전만 해도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회사였다. 직원들의 열패감도 뿌리 깊었다. 그런 회사가 이 대표 취임 후 완전히 바뀌었다. 3년 만에 수탁액은 2배, 자기자본은 2.5배, 순이익은 10배가 됐다. 이 대표는 평소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자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을 즐겨 한다. 지금은 BNK자산운용 임직원들도 그 말의 힘을 믿고 있다. 각자가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회사는 우뚝 섰다. 애널리스트에서 경영자로
이 대표는 부산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부국증권에 입사했다. 증권맨이던 형을 보며 애널리스트의 꿈을 키웠다. 입사가 쉽지는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특수로 이듬해 1000선을 돌파하던 코스피지수가 1990년 9월 559선까지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증시가 반토막 나자 지점엔 칼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있었고, 증권사는 너도나도 신입사원 채용을 미뤘다. 운 좋게 부국증권 한 곳에서 공채를 시행해 이 대표는 여의도에 발을 들였다.
이 대표는 2009년까지 애널리스트로 한 우물을 팠다. 닷컴버블이던 2000년 벤처캐피털(VC)을 차리기도 했지만 ‘외도’는 1년 만에 끝났다. 다시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로 돌아온 이 대표는 매년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을 관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일을 20년 하다 보니 신사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09년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로 자리를 옮긴 이 대표는 해외주식팀을 꾸려 미국·중국·일본·홍콩 등 4개국에 대해 온라인 주문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서학개미’라는 말이 그로부터 11년 뒤 생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상의 변화를 얼마나 빨리 포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해외주식팀은 지속적으로 수익이 늘어 별도 부서로 독립하기도 했다. 단순한 상사 아닌 인생의 멘토2017년 어느 날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이 동향이던 이 대표를 불러 이렇게 물었다. “고향에 봉사해볼 생각이 없냐”고. 당시 BNK자산운용은 GS그룹이 자금을 대준 덕에 겨우 숨만 붙어 있던 업계 꼴찌의 운용사였다. ‘꼴찌니까 더 내려갈 일도 없잖아.’ 이 대표는 김 회장의 손을 잡았다.
막상 출근해 보니 회사는 상상 이상으로 엉망이었다. 펀드매니저들은 기업 탐방을 가지 않았다. “왜 가지 않느냐”고 물으면 “별 볼 일 없으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새 상품을 만들자고 말하면 “과연 팔릴까요”라는 부정적 반응부터 보였다. 당시 직원들은 자신의 연봉을 깎아서 BNK자산운용에 온 사람들이었다. ‘적당히 벌면서 놀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왔는데, 의욕에 충만한 대표가 왔으니 그들도 당황스러웠다.
이 대표는 사람부터 바꿨다. 다행히 여의도엔 그를 인생의 멘토라 부르며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투자자문사를 차려 연 50%의 수익률을 내며 이름을 날렸던 안정환 부사장도 ‘스승’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러자 안 부사장에게 배우고 싶다며 똘똘한 직원들이 BNK자산운용에 모였다. 안 부사장은 “이 대표는 과거 나와 함께 이직하려고 자신의 연봉까지 깎은 적이 있다”며 “인생의 멘토가 불렀으니 기꺼이 왔다”고 말했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자 기존 직원들은 위기를 느끼고 알아서 회사를 떠났다. 지금 BNK자산운용엔 77명이 있지만 이 중 이 대표보다 사번이 빠른 직원은 5명밖에 없다.
직원들이 이 대표를 따르는 건 그가 인생의 선배로서 직원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시장이 무너져 상실감에 빠진 직원들에게 이 대표는 한 가지를 당부했다. 술로 스트레스를 풀지 말라고. 대신 한 달간의 사색을 권유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3~5명씩 조를 편성해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공부하고 토론해보자고 제안했다. 1등에겐 300만원의 상금도 걸었다. 직원들은 똘똘 뭉쳐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고민했고, 그 덕분에 이후 이어진 반등장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대표펀드 ‘BNK튼튼코리아1호(A클래스)’는 최근 1년 수익률이 74.81%(24일 기준)로 유가증권시장 수익률(59.60%)을 큰 폭으로 웃돈다. “시장의 경계 자체를 넓히자”BNK자산운용은 3년간 자산운용업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7년 3조3742억원이던 수탁액은 현재 8조5543억원으로 2.5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자기자본도 408억원에서 1620억원으로 4배로 증가했다.
눈부신 성장에 BNK자산운용에선 2019년 초 처음으로 성과급이 지급됐다. 한 직원은 “성과급을 받아볼 날이 올 줄 몰랐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목마르다. 이 대표는 5월 초 본부장 회의를 처음으로 주재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존에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선 앞으로 평가하지 않겠다. 새로운 상품을 가져오든지 새로운 채널을 뚫어와야만 평가하겠다.” BNK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인프라 투자도 시작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시작한 금융회사라는 점을 살려 항만과 도로 등에 대한 투자로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의도다. 연금시장을 잡기 위해 TDF(타깃 데이트 펀드)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이 대표의 직무실에는 ‘EDGE WORK(에지 워크)’라고 쓰인 A4 용지가 붙어 있다. 기존의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것도 좋지만, 그 시장의 경계 자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향유하자는 의미다. 이 대표는 “자산운용업의 경계를 어디까지 더 넓힐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윤학 대표는
△1965년 부산 출생
△1991년 부산대 무역학과 졸업
△1991년 부국증권 리서치센터 투자분석부
△1999년 제일투신증권 리서치센터 투자분석부
△2001년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부 수석전략가
△2009년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해외상품부 이사
△2014년 NH투자증권 100세시대 연구소 소장
△2017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