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캐릭터 ‘웨일’ 교수가 가상 강의실을 누빈다. 오프라인 강의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가상현실(VR)글라스를 머리에 쓰고 컨트롤러를 손에 쥐자 가상 강의실이 금세 가득 찬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현실세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양전하를 직접 손으로 잡고 던지며 전자기학의 기본 법칙인 ‘콜롱의 법칙’을 체득한다. 감각으로 익힌 지식은 가상 강의실 바깥에서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영화 속 미래 대학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달 개소한 한국산업기술대 공학교육실습실 ‘퓨처VR랩’에서 이번 학기 이뤄지고 있는 전자기학 강의다.
메타버스가 교육현장을 바꿔놓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실험도 메타버스에서는 가능하다.
한국산업기술대는 국내 최초로 캠퍼스 내에서 20여 명이 동시에 VR실습을 할 수 있는 메타버스 공학교육실습실(사진)을 구축했다. 지난해 이택희 게임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창업한 ‘연구실 벤처’ 웨일텍이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번 학기에는 세 과목 강의에 메타버스를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신입생 교육 등 적용 대상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이 교수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위에 올라탄 채 임진왜란 관련 역사 수업을 들으면 내용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메타버스 교육의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대면 강의가 중단되면서 메타버스는 교육현장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올 3월 순천향대 2021학번 입학생들은 국내 최초로 비대면 입학식을 했다. SK텔레콤과의 협력을 통해 캠퍼스를 본뜬 가상공간을 SKT ‘점프VR’ 플랫폼에 마련했다. 담당교수와의 상견례, 캠퍼스 투어까지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 이뤄졌다. 이미 미국에서는 작년 5월 UC버클리가 마인크래프트에서 학생과 교수의 아바타가 참가한 채 졸업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숭실대는 최근 봄 축제를 메타버스 플랫폼인 개더타운에서 열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끝나도 메타버스는 교육계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미 세계에서 전통적 교수법의 틀을 깨는 교육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메타버스 교육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 교수법에 대한 이야기”라며 “학생 수가 급감하는 와중에 각 대학은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최고의 학습경험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메타버스 교육을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KGI대학원과 벤처사업가 출신 투자자 벨 넬슨이 세운 미네르바스쿨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4년 문을 연 이 학교는 캠퍼스가 없다. 모든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언뜻 학사 과정이 부실할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일반 온라인 강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체 온라인 교육 플랫폼 ‘포럼’을 통해 실시간 토론 수업이 이뤄진다. 각 학생이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지, 참여도는 어느 수준인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미네르바스쿨의 합격률은 1% 안팎으로, 하버드대보다 더한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