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가스공장을 무조건 반대한다.’ 지난 20일 경기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 곳곳엔 이런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방축리 일대는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에어퍼스트가 9400억원을 들여 평택 3공장과 연결되는 가스공급시설을 짓기로 한 곳이다. 굴삭기가 세워져 있는 등 공사 준비는 끝났지만 작업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주민 반대에 부딪혀 착공 일정이 미뤄진 탓이다. 주민 반대에 발목 잡힌 평택 사업장
경기 평택에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가 복병을 만났다. 24일 평택시에 따르면 삼성전자 평택 3공장을 위한 가스공급시설의 착공 일정은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다. 작년 12월 도시계획심의를 통과했지만 평택시의 인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주민들과의 협의가 끝나야 공사를 위한 인가를 내줄 수 있다”고 했다.
방축리에 들어서는 가스공급시설은 부지 매입이 지난해 말 끝난 데다 지중화 방식으로 파이프를 건설하기에 별도의 토지보상절차가 필요 없다. 올해 초 4월이면 첫 삽을 뜰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배경이다. 기류가 바뀐 것은 지난 3월이다. 방축리 인근 주민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공장 건설에 반대하고 나섰다. 가스공급시설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교통이 혼잡해진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건설 자재를 실은 트럭과 건설 중장비가 마을 도로를 오가는 것에도 반대하고 있다. 가스업계 관계자는 “다른 곳에서 생산한 가스를 차량을 통해 실어나르는 방법도 있지만 물류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안전성 측면에서도 공장을 짓고 파이프로 가스를 실어나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방축리 일대는 가스공급시설뿐 아니라 삼성전자 평택사업장과 관련된 협력업체들이 입주하는 첨단복합 일반산업단지가 159만4226㎡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주민의 반대가 길어지면 협력사들의 입주도 어려워질 수 있다. 평택시는 지난달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개발제한 공고를 냈고, 올 9월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방축리 주민들의 ‘공사 보이콧’과 관련, 시 관계자는 “주민들과의 협의는 사업 시행사에서 할 일이라 시에서 관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3공장 준공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지켜보는 단계”라며 “공장 가동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업 당사자인 에어퍼스트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가스 없인 정상 가동 힘들어삼성전자와 에어퍼스트가 짓기로 한 가스공급시설에선 산소, 질소, 아르곤 등이 만들어진다. 원재료가 공기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오염 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 가스가 누출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시설에서 제조된 기체는 45m 지하 파이프라인을 통해 반도체 공장으로 보내지는데, 가스설비가 평택사업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만큼 가깝다.
삼성전자가 산소, 질소, 아르곤 등을 따로 만드는 것은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해서다. 산소와 질소는 실리콘 웨이퍼를 식각하고 세정할 때, 아르곤은 웨이퍼에 얇은 막을 입힐 때 쓰인다. 여러 특수가스 중 하나라도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반도체 생산 라인이 멈춘다.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은 한국 반도체산업의 전초기지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가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한 곳도 평택 3공장 건설 현장이었다. 지난해 9월 착공에 들어간 평택 3공장은 축구장 25개 크기의 세계 최대 반도체 사업장이다. 극자외선(EUV) 노광공정을 활용한 14㎚ D램, 시스템온칩(SOC) 등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평택 3공장의 준공 예정 시점은 올해 말이다. 내년 3월에 장비 반입이 시작되며 양산은 하반기께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이뤄지려면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가스가 공급돼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스설비 공사 기간을 감안하면 한두 달 안엔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