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에 170억달러 반도체 투자하지만...3대 난제 넘어야

입력 2021-05-24 17:00
수정 2021-05-24 17:02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이었던 21(현지시각)일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미국에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에 이어 2위인 삼성전자의 투자계획인 만큼 미국 정부도 반색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입장에선 파운드리 투자로 몇 가지 풀어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고 보고 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생산을 주문하는 기업이 있어야 하는 만큼 수주물량 확보가 필수다. 삼성전자로선 1위업체인 TSMC와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반도체 호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도 부담이다. TSMC와 격전 예상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8% 가량이다. TSMC(54%)에 이어 2위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 처음 진출했던 2005년 당시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TSMC, UMC, 글로벌파운드리 등 상위 3개 업체의 점유율이 70%를 넘었다. 삼성전자는 진출 이후 애플의 AP를 잇달아 위탁 생산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특히 첨단공정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실행하면서 2위로 급부상했다.
때문에 TSMC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TSMC는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함께하는 삼성전자와 달리 제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업체들에게 기술 유출 불안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팹리스 업체들도 호응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순수 파운드리 업체가 아니라는 점이 수주 물량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도 팹리스 부문과 파운드리 부문이 별도로 움직인다는 점을 고객들에게 강조하지만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긴 쉽지 않다"고 전했다. 펜트업 소비 끝날 수도
현재는 펜트업(보복) 소비 등으로 반도체 업계가 슈퍼사이클에 들어갔다고 보지만 이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 최소 2~3년 뒤부터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데 과잉 시설투자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사이클을 언급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가 가전·IT기기로 방향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의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MCU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공급이 제한돼 반도체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반도체 및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최대 30조원이 넘는다. 이는 지난해 18조8100억 원과 비교해 60% 증가한 숫자다.
하지만 펜트업 소비도도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사그라들 수 있기 때문에 2~3년 뒤 수요를 예측하기가 난감한 상황이다.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벌써 올해 말 소비 동향도 예측하기 힘들다"며 "가전업체들은 이미 재고 보유 기간을 짧게 가져가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총수 부재로 의사결정 늦어져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수감 상태가 이어지면서 무엇보다 공격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다. 미국 파운드리에 1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도 TSMC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TSMC는 지난해 120억달러를 투자해 2024년까지 미국 애리조나에 5㎚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최근엔 최대 25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미국에 3㎚ 라인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구심점이 없으니 대규모 투자를 섣불리 결정하기 힘들다"며 "지금 TSMC를 따라잡지 않으면 만회하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벌어질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