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사기 인터뷰' 후폭풍…BBC 개혁 요구 불붙었다

입력 2021-05-22 21:54
수정 2021-06-21 00:01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다. 그래서 약간 복잡했다"란 발언으로 유명한 고(故)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의 1995년 BBC 인터뷰 성사 배경으로 직원의 사기 행위가 드러났다. 이에 영국 공영방송 BBC에 수신료 삭감과 개혁 요구 후폭풍이 불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더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가구당 연 159파운드(약 25만5000원)에 달하는 수신료(라이선스 피)를 5년간 동결 혹은 삭감하는 방안을 두고 BBC와 협상 중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더타임스 측에 BBC가 이번 사안으로 명성을 망가뜨렸고, 이는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BBC의 수신료는 2015년 합의에 따라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인상되는 수순이다. 수신료 수입만 연 32억파운드(약 5조1000억원)에 달한다.

앞서 1995년 11월 BBC '파노라마'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다이애나비의 인터뷰는 2280만명이 시청하며 큰 화제를 낳았다. 다이애나비가 남편인 찰스 왕세자의 불륜을 처음으로 털어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뷰 배경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BBC는 지난해 11월 퇴직한 대법관인 존 다이슨 경에게 독립조사를 의뢰했다. 다이애나비의 동생인 찰스 스펜서 백작은 1995년 당시 무명 기자였던 BBC의 마틴 바시르가 거짓말과 위조된 은행 입출금 내역서 등으로 인터뷰를 주선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고, 지난해 이를 공개 폭로했다.

다이슨경은 20일 발표된 조사 보고서에서 "바시르가 부적절하게 행동했고 BBC의 편집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스펜서 백작의 주장을 인정했다. 다이슨경은 또한 바시르에게 잘못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1996년 BBC 조사를 비판하고, "BBC의 특징인 높은 윤리와 투명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BBC에 대한 쇄신 압박도 거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전날 BBC 인터뷰 조사 결과와 관련, 왕실 인사들에게 공감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BBC가 모든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다이애나비의 아들인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는 강하게 BBC를 비판했다.

윌리엄 왕세손은 "BBC의 잘못이 어머니의 두려움과 편집증, 고립에 상당한 원인이 됐다는 점을 알아 형언할 수 없이 슬프다. BBC가 제대로 조사했다면 어머니도 자신이 속았다는 점을 알았을 것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슬프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영방송과 자유언론이 지금보다 중요한 적이 없었다. (BBC의) 잘못은 내 어머니와 가족뿐 아니라 대중도 실망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윌리엄 왕세손의 동생인 해리 왕자도 한층 날을 세웠다. 해리 왕자는 "악용의 악습과 비윤리적 관행의 파급효과가 결국 어머니 목숨을 앗아간 것"이라며 "어머니가 (비윤리적 관행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바뀐 것이 없다"고 공세를 펼쳤다.

BBC를 둘러싼 분위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로버트 버클랜드 영국 법무부 장관은 BBC의 지배구조 문제가 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영국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 역시 BBC의 투명성과 책임에 관해 중요한 문제가 제기됐다고 평가했다. 토니 홀 전 BBC 사장은 내셔널 갤러리 이사장직에서 퇴진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