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 일본은 수두와 일본뇌염, 백일해의 백신 기술을 미국에 제공하던 백신 강국으로 꼽혔다. 1975~1989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160개의 신약을 개발한 제약 강국이기도 했다.
그랬던 일본이 러시아와 중국도 내놓은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일본 미디어들도 일본을 ‘백신 후진국’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30여 년 새 일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문가들은 일본을 백신 선진국 자리를 스스로 ‘반납’한 국가라고 평가한다. 여기에는 두 차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 계기는 1992년 12월 18일 나온 도쿄고등법원의 판결이다. 1952~1974년 인플루엔자, 홍역, 볼거리 등 백신을 접종한 자녀가 부작용으로 장애를 입거나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부모와 가족 160명이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령했다.
훗날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에 따르면 이 판결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과학적인 근거가 인정되지 않은 현상까지도 부작용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피해자 구제의 길을 열어준 획기적인 판결”이라는 여론에 밀려 상고를 포기했다.
1994년에는 법을 개정해 예방접종을 의무사항에서 벌칙 조항이 없는 ‘노력 의무’로 완화했다. 이로 인해 유아의 백신 접종률이 뚝 떨어졌고 학교에서 이뤄지던 단체 예방접종도 사라졌다. 수요가 급감하자 제약사들은 일제히 백신 사업에서 철수했다.
두 번째 계기는 1996년 벌어진 혈우병 에이즈 사건이다. 비가열 처리 방식의 혈액 응고제에 에이즈균이 섞여 들어가면서 일본 혈우병 환자의 40%인 1800명이 에이즈에 걸렸고 4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996년 재판에서 해당 의약품을 판매한 제약회사는 물론 후생노동성 담당 과장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총리 말도 안 먹히는 부처’로 악명 높은 후생노동성의 복지부동을 고착화하는 구실이 됐다. 판결 이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승인이 이뤄진 백신이 일본에서 승인을 받는 데 10년 이상 걸리는 ‘백신 갭(공백)’이 일상화됐다.
2017년엔 바이오 기술을 응용해 인플루엔자 백신을 개발한 제약벤처기업 UMN파머가 10년 가까이 후생노동성의 인가를 받지 못해 파산하는 일이 터졌다.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확산하지 않으면 수요가 생기지 않는 백신 개발은 민간 기업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기 부담스러운 사업이다. UMN파머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정부가 기업의 백신 개발을 지원하기는커녕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의 백신 기술이 30년 가까이 잠자고 있는 사이 세계 의약품 시장은 연간 130조엔(약 1347조원)이 넘는 거대 시장으로 커졌다. 세계 백신 시장은 매년 7%씩 성장하고 있다. 일본과 대조적으로 미국은 2001년 탄저균 테러 사건을 계기로 백신 개발 체제를 한층 발전시켰다. 정부가 제약회사 등과 협력해 개발자금 지원부터 임상시험, 긴급사용허가(EUA) 등 백신 개발 전 과정을 종합 지원한다.
특히 EUA는 미국 제약사가 1년도 안 돼 코로나19 백신을 출시할 수 있게 한 제도적 장치로 평가받는다. EUA는 긴급 상황에서 최종 임상시험인 임상 3상을 사후 데이터 검증으로 대체하는 제도다.
일본도 시오노기제약 등 네 곳의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1~2차 임상시험을 마쳤지만 3상 결과에 따른 승인제도를 고집한 규제에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 뒤늦게 일본 정부가 미국의 EUA를 본뜬 특례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일본산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는 시기는 일러야 내년 이후가 될 전망이다. 나카야마 데쓰오 기타사토대 특임교수는 “일본의 백신 공백은 정책 공백이 초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8일 기준 일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3%대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일본 정부는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21일 모더나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백신 사용을 승인했다. 이미 승인이 이뤄진 화이자 백신 9700만 명분에 아스트라제네카(6000만 명분)와 모더나(2500만 명분) 백신이 추가돼 모든 국민이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확보했다고 일본 정부는 설명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