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값이 한 달여 만에 40% 떨어지면서 ‘3년 전 폭락장’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친(親)암호화폐 진영은 “건강한 조정”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비트코인을 둘러싼 주변 여건에 우호적인 구석을 찾기가 어렵다. ‘G2’ 미국·중국의 견제가 강력해졌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로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흔들리고 있다. 올 들어 두 배 이상 급등하며 낀 거품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일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4800만~5200만원, 이더리움은 300만~350만원 선에 거래됐다. 한 달여 만에 고점 대비 40%가량 빠졌다. 도지코인은 반토막 수준인 400원대를 맴돌았다. 코인마켓캡이 집계한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지난 12일 사상 최대(2900조원)를 찍은 이후 8일 만에 1000조원 줄어 이날 1900조원대로 후퇴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은 17~18세기 튤립 투기와 남해회사 거품을 능가한다”고 했다. 중국 금융당국은 전날 암호화폐 거래·사용 불가 방침을 거듭 밝혔다.
암호화폐가 가장 두려워하는 ‘규제 리스크’가 고개를 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물가와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비트코인 상승장의 원동력이던 유동성(투자금) 유입도 불확실해졌다. 비트코인 가격은 테슬라가 암호화폐 투자 사실을 발표한 2월 초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WSJ "암호화폐에 염증 느낀 투자자들 떠난다"비트코인은 2010년대 초반 ‘화폐의 미래’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큰 변동성 때문에 교환의 매개(화폐)로 쓰기 어렵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페이팔 등의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 개시가 호재로 작용하긴 했지만 실제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에서 상징적 조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최근 암호화폐 지지자들은 비트코인을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주목해왔다. 현금을 쥐고 있으면 손해인 시대에 금(金)을 대체하는 가치저장 수단(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연초(3259만원) 대비 여전히 50% 이상 높다. 하지만 조정장이 깊어지고 수익률이 하락한다면 자산으로서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7년 비트코인 랠리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비트코인 선물 상장으로 끝났듯 이번 랠리도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나스닥시장 상장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코인 열풍을 이끌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신뢰도마저 흔들려 남은 호재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변동성이 극심한 암호화폐에 염증을 느낀 투자자들이 떠나고 있다”고 했다.
상승을 유발할 재료가 넘쳐나던 암호화폐 시장에 요즘은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은 암호화폐 거래·사용 등이 처벌 대상이라고 엄포를 놨고, 미국 정부가 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를 돈세탁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주요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분위기’만 풍겨도 가격이 흔들리는 것은 정부 규제가 암호화폐 시장의 최대 리스크임을 보여준다.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 국내 가격은 지난 19일 밤 10시께 ‘수직 낙하’하면서 한때 4200만원까지 주저앉았다. 다만 저가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20일 5000만원대로 반등에 성공했다. 미국 시세는 4만달러에 턱걸이했다.
델라노 사포루 뉴스트리트어드바이저 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장기 투자자라면 당분간 오지 않을 좋은 저가 매수 기회”라고 했다. 투자자 사이에서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5000만원·4만달러가 무너진 것이 심상치 않은 신호라는 지적도 나온다. JP모간은 “비트코인이 지난달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기관투자가의 관심이 금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