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관계에서 '삭제'를 전제로 찍었던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된 데 대해 직접 유출 증거가 없어도 원인을 제공했다면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민사6단독(박형순 판사)은 지난 14일 피해자 A씨가 전 남자친구 C씨(31)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고 3000만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앞서 A씨는 2014년 교제하던 B씨로부터 성관계 영상 촬영 제안을 받았고, 촬영 이후 즉시 삭제한 뒤 보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촬영에 동의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8년, 전 남자친구 B씨와의 성관계 영상이 온라인상에 퍼진 것을 확인한 A씨는 경찰에 유포 경위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경찰은 영상 촬영자인 B씨가 유포자일 가능성을 높게 봤지만 처음 영상이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 사이트가 폐지되는 등 최포 유포자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검찰에서도 B씨가 유포했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해 B씨는 2019년 12월31일 무혐의 처분됐다.
이후 A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민사소송을 걸었다. A씨는 B씨가 영상을 부주의하게 관리한 책임이 있고,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지난해 6월 서울북부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3000만원부터 정식 재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A씨는 전 남자친구에게 위자료 3000만100원을 청구했고,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비록 유포했다는 직접 증거가 부족해도 완벽하게 삭제하기로 합의하고도 무려 3곳에 저장해 동영상이 유출될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면서 피해자의 고통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B씨 측은 해킹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그 원인도 영상을 몰래 저장한 사람의 책임"이라면서 "단순 부주의로 보기 어렵고 원고의 인격권과 사생활도 침해됐다"고 판시했다.
한편, B씨는 앞선 수사 과정에서 A씨가 아닌 다른 여성 3명과의 성관계 영상을 보관하고 있었음이 드러나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