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같은 원자력발전소의 등장은 원전의 추세가 대형 경수로에서 소형모듈원전(SMR)으로 옮겨가는 신호탄으로 원전업계는 해석한다. ‘미술관 원전’을 선보일 뉴스케일은 미국 에너지부가 지원하고 있는 SMR 개발업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소유한 테라파워와 마찬가지로 에너지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은 “SMR과 같은 혁신 기술을 창출하려면 큰 시각에서 새로운 규제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업계는 이르면 7~8년 안에 SMR 시장이 활짝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고 위험 제로(0)’에 도전
원전은 인위적으로 만든 중성자로 우라늄을 때려 핵분열을 일으키고, 이 열로 증기터빈을 데워 발전기를 돌리는 장치다. 생성되는 중성자 개수를 항상 일정하게 통제하는 게 핵심이다. 원전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중성자가 고속으로 돌아다니면 고속로(FR), 아니면 열중성자로(TR)다. 국내 원전은 열중성자로다. 열중성자로는 감속재와 냉각재를 동시에 쓰고, 고속로는 냉각재만 쓴다.
SMR은 핵연료를 외부 방출이 불가능한 특수 피복재로 감싸 방사능 유출 위험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형 원전은 부피가 커지면서 각종 계통이 무수한 파이프로 얽혀 이 가운데 극미한 균열만 일어나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SMR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가장 독특한 원자로’로 꼽히는 SMR인 용융염원자로(MSR)는 불화우라늄, 지르코늄, 리튬 등이 섞인 용융염(소금과 함께 녹아 있는 물질)을 연료로 핵분열을 한다. 위험이 감지되면 일순간 시스템이 모두 굳어버려 사고 위험이 ‘제로’다. SMR은 또 중저준위 폐기물을 양산하는 붕산을 감속재로 쓰지 못하도록 기술표준이 정해져 있다. 대형 원전은 중성자를 잡는 감속재로 물과 붕산을 사용한다. 세계는 ‘SMR 개발 전쟁’SMR 여섯 가지 유형 중 개발 속도가 빠른 건 소듐냉각고속로(SFR)와 납냉각고속로(LFR), 고온가스로(VHTR) 등 세 가지다. 세계 각국이 50여 기를 개발하고 있다. SFR은 냉각재로 소듐을, LFR은 납을 쓴다. SFR과 LFR은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핵폐기물)를 재처리할 수 있는 파이로프로세싱이 가능하다. 열중성자로인 VHTR은 흑연을 감속재로, 헬륨을 냉각재로 쓴다.
SFR과 VHTR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각국이 뛰어들어 개발 중이다. LFR은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벨기에가 개발하고 있다. SFR 상용 시설은 러시아가, VHTR은 중국이 가동 중이다. 이들 시설의 기술은 문서화돼 있지 않아 사양이 베일에 싸여 있다. 러시아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R인 ‘SMART’가 인허가 문제로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이 수년간 막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원전 설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미국에선 오클로파워와 뉴스케일이 SMR 기술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오클로파워는 물 대신 이산화탄소를 가열해 터빈을 돌리는 초임계 기술을 처음 적용해 주목받고 있다. 그린수소 ‘끝판왕’ SMRSMR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고온수전해(SOEC)와 연결해 안정적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어서다. ‘수소경제의 화폐’인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은 크게 알카라인 수전해, PEM 수전해, SOEC로 나뉜다. 상온에서 작동하는 알카라인·PEM 수전해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연결해야 한다. 들쭉날쭉한 전기 공급 때문에 시스템 안전성을 갖추기가 어렵고 대형화도 곤란하다.
SOEC는 대형화가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효율도 90% 이상으로 알카라인·PEM(80% 이하)보다 더 높다. 독일 선파이어가 기술을 선도하는 가운데 미국 블룸에너지, 일본 교세라와 미쓰비시파워가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SOEC와 VHTR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SOEC 전해조에 700~850도 증기를 넣고 전기를 가하면 그린수소가 나오는데, 이 증기와 전기를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최적 설비가 VHTR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이 SOEC와 VHTR을 결합한 플랜트를 캐나다에 지을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