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실거주 목적으로 아파트 매매계약을 하고 계약금까지 지급했다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가 있더라도 임대차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처음 나왔다.
1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문경훈 판사는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한 A씨 등이 임차인 B씨 등을 상대로 낸 건물인도 소송에서 "B씨는 임대차기간이 끝나면 보증금 5000만원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A씨 부부에게 건물을 인도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A씨 부부는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약 3주 전인 지난해 7월5일에 C씨와 아파트 매매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지급했다.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한 아파트는 13억5000만원으로 계약금으로 1억3000만원을 지급했다.
계약 당시 B씨는 2019년 4월15일부터 2년 동안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30만원에 임차인으로 거주중이었다. A씨 부부는 이후 잔금까지 처리하고, 같은해 10월30일 소유권 이전등기를 했다.
B씨는 올해 4월14일 임대차 계약이 만료될 예정일이었다. 하지만 B씨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도입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시행 이후인 지난해 10월5일 임대차계약 2년 연장을 전 주인인 C씨에게 요구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지난해 7월31일 시행됐다.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전 6개월부터 2개월 사이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이 갱신되는 계약갱신요구권이 포함됐다. B씨를 이를 근거로 등기가 넘어가기 전에 C씨에에 계약갱신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C씨는 "A씨 부부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며 B씨 요구를 두 차례 거절했다. B씨는 지난해 10월5일 임대차계약 2년 연장을 요구하는 문자메시지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C씨는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 이후인 지난해 10월15일 내용증명우편을 통해 임대차기간 갱신거절을 통지했다.
이후 A씨는 집 소유권을 넘겨받았음에도 B씨는 "집에서 나가지 않겠다"며 임대차 계약 갱신을 요구했다. 그러자 A씨 "이전 집 주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해 B씨와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라고 봐야 한다"며 법원에 건물 인도 소송을 냈다. A씨 부부는 아직 새로 산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문 판사는 판결문에서 "A씨 부부들로서는 매매계약 당시 이 사건 임대차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당연히 자신들이 거주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믿음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인정할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매매계약 당시 도입될지 알 수 없던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실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면 이는 형평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실거주 목적으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한 A씨 부부 입장에서는 이후 개정 임대차법이 도입될 지 알 수 없었다는 것. 때문에 소유권이전등기가 안 됐더라도 계약 갱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만약 A씨 부부가 B씨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기 이전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면 C씨로부터 임대인 지위를 승계해 적법하게 계약갱신요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C씨가 '개정 임대차법 시행 전 실제 거주를 할 예정인 A씨 부부에게 이 아파트를 매도했다'는 것을 이유로 한 계약갱신요구 거절은 9호 '그밖에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B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강제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은 1500만원을 공탁하는 조건으로 2심 선고 전까지 집행을 정지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