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바꾼 DNA '종근당 80년' 만들다

입력 2021-05-19 15:29
수정 2021-05-19 15:31

종근당이 ‘팔순’을 맞았다. 종근당의 80년은 ‘대한민국 제약사(史)’와 궤를 같이한다. 원료의약품 합성, 중앙연구소 설립, 신약 개발, 건강기능식품 시장 개척 등 제약업계가 굵직한 변곡점을 맞이할 때마다 종근당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장한 회장은 지난 80년을 “위기를 기회로 바꾼 시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종근당 임직원의 머릿속에 새겨진 이런 DNA를 앞세워 한국을 대표하는 헬스케어 기업으로 커나가자고 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80년종근당 창업주인 고촌(高村) 이종근 회장은 1939년 약품 행상을 시작하며 약업과 연을 맺었다. “직접 약을 만들겠다”며 종근당의 모태인 궁본약방을 세운 건 1941년이었다. 이 회장은 이후 “우리 국민의 생명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제약주권과 “제약산업을 일으켜 나라에 보답한다”는 약업보국을 지키는 데 일생을 바쳤다.

의약품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 국내 최대 규모의 합성공장(1965년)과 발효공장(1974년)을 설립해 원료를 국산화했다. 1968년에는 항생제 ‘클로람페니콜’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국내 최초로 받았다. 이듬해 대한민국 의약품 총수출액(110만달러)의 56.5%(62만달러)를 종근당 홀로 채웠다.

1972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하나씩 결실을 맺었다. 1980년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항결핵제 ‘리팜피신’을 개발, 결핵 치료제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격은 당시 2만7000원이었던 수입 치료제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1980년대 들어선 선진화된 제약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와 잇따라 손을 잡았다. 1980년 한국롱프랑제약, 1983년 한국로슈, 1986년 한국그락소 등을 설립했다.

이 회장의 ‘제약주권’과 ‘약업보국’ 정신은 2005년 제정한 고촌상을 통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저렴한 국산 결핵 치료제를 개발한 이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창조적인 K헬스 리더 되겠다”종근당은 1993년 2세 경영인인 이장한 회장 취임과 함께 새로 태어났다. 당시는 1987년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도입과 1991년 외국인 100% 출자 허용 등의 여파로 국내 제약업계의 판이 흔들리는 시기였다. 전문의약품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회장은 혁신 경영으로 돌파했다. 본부제로 조직을 개편하고 소사장제를 도입하며 책임경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1998년 동양 최대 규모의 완제의약품 공장을 천안에 지었다. 1996년 건강기능식품 회사 종근당건강을 설립했고, 원료의약품 합성회사인 경보제약을 인수했다. 2001년에는 원료의약품 발효회사인 종근당바이오를 분할하고, 2013년에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해 종근당바이오와 경보제약의 합산 매출은 3400억원으로 국내 원료의약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종근당건강은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인 ‘락토핏’을 앞세워 지난해 497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장의 혁신 경영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숫자가 말해준다. 취임 당시 1085억원(연결 재무제표 기준)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2조3381억원으로 21배 커졌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53억원에서 2890억원으로 19배 불었다.

이 회장은 최근 연 80주년 기념식에서 종근당 80년 역사에 대한 소회와 당부를 임직원들에게 건넸다. 이 회장은 “지난 80년 동안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성장해온 것은 종근당의 자부심이자 고유의 DNA가 됐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런 종근당의 DNA를 100% 발휘하면 인류 건강을 지키는 제약기업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규정한 종근당의 DNA는 새로운 비전인 ‘창조적인 K헬스케어 DNA(Creative K-healthcare DNA)’에도 들어갔다. 종근당의 영문 이니셜 ‘CKD’를 활용해 이 회장이 강조해온 △창의력 있는 제약사 △한국의 대표 헬스케어 기업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DNA 등을 담았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