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은 앞으로 5년간 미국에 74억달러(약 8조4000억원)를 투자한다. 전기차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고, 미래 모빌리티(이동수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을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핵심 시장과 친환경차 및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차 분야 등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시작했다”며 “미래 기술을 선점하고 핵심 시장에서 점유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글로벌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수소·UAM에 집중 투자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미국 내 전기차 생산설비 구축과 미래 모빌리티 기술 확보 등에 74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주 투자 분야는 전기차, 수소,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보틱스, 자율주행 등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래 혁신 기술 투자를 통해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선제적으로 이끌고 미국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모델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미국 공장에서 전기차를 제조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다. 첫 전용 플랫폼 기반 전기차인 아이오닉 5 등이 후보다.
미래 모빌리티 분야 투자는 기술 기업을 인수하거나 이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연방 에너지부와 수소 및 수소연료전지 기술 관련 협력을 지속하고, 현지 기업들과도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할 계획이다. 수소전기트럭 상용화 시범사업과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공급 등도 함께 추진한다.
현대차·기아는 국내와 미국 외 다른 주요 시장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를 열고 연구개발(R&D) 및 미래차 기술 확보 등을 위해 2025년까지 6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등에 36조6000억원, 미래 사업 역량 확보에 23조5000억원을 쏟아붓겠다는 설명이다.
미래 사업 관련 투자를 뜯어보면 전동화에 10조8000억원, 수소사업에 4조1000억원, UAM 및 로보틱스에 4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자율주행(1조6000억원), 모빌리티서비스(1조2000억원), 커넥티비티(1조원) 등도 투자 대상이다. 기아도 2020~2025년 29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R&D에 13조원, 경상투자에 10조원, 전략투자에 6조원 등이다. ○‘로봇 개’ 개발 회사도 인수한다현대차그룹은 해외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도 최근 늘리고 있다. 미국 로봇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8억8000만달러(약 9930억원)를 들여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차(30%)와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 정의선 회장(20%) 등이 지분을 보유하기로 했다.
물구나무서기, 공중제비 같은 동작을 해내는 로봇 개를 개발한 회사로 유명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동로봇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을 기반으로 물류 및 서비스형 로봇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자율주행 기술기업 앱티브와 함께 합작법인도 세웠다. 현대차그룹과 앱티브는 각각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를 투자했고, 지난해 합작법인 모셔널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내년까지 4단계 자율주행 시스템(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달리는 수준)을 선보일 계획이다.
모셔널은 앱티브의 자율주행 부문 인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회사다. 그러다 보니 2000년대 초부터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한 인재가 많다. 다양한 연구 경험도 쌓여 있다. 앱티브 시절을 포함하면 모셔널은 2015년 세계 최초로 완전자율주행차로 미 대륙을 횡단한 기록을 갖고 있다. 2016년엔 세계 최초로 로보택시 시범사업을 했다. 2018년부터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로보택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로보택시 서비스는 10만 명 이상이 이용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