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복숭아·빅데라 포도·죽향…너무 달콤한 너, 오늘부터 1일

입력 2021-05-13 17:04
수정 2021-05-21 15:58
잘 빚은 도자기를 닮은 우윳빛 멜론(백자멜론), 거대한 참외처럼 생긴 노란색 멜론(양구멜론)…. 멜론이라고 써놓지 않았다면 ‘이게 뭔가’ 한참 고민할 뻔했다. 그물 모양의 줄무늬가 특징인 일반 멜론과는 확연히 달랐다. 생김새뿐인가. 당도가 높아 훨씬 달고, 맛도 좋다.

13일 방문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엔 이런 ‘프리미엄 과일’이 수두룩했다. ‘평소 알고 먹던 그 과일’이 다양한 형태로 낯선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한기수 롯데백화점 청과 바이어는 “얼마나 다르겠느냐는 호기심으로 먹어봤다가 단골이 된 고객이 많다”며 “과일의 맛과 풍미를 만끽하려면 프리미엄 과일을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국산 명품 과일의 진격롯데백화점 본점의 프리미엄 과일 하루 매출은 500만원 수준이다. 판매대에 오른 뒤 하루이틀 이내에 준비한 수량이 동나는 사례가 많다. 이곳에서 요즘 판매하는 대표 프리미엄 과일 4종은 모두 국산이다. 이달 처음 선보인 ‘빅데라 포도’는 경북 상주에서 개발한 프리미엄 품종이다. 씨가 없어 먹기 편하며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하다. 한 송이에 9900원이다.

경남 김해 8개 농가에서 한정 생산하는 ‘블루베리 유레카’도 핵심 프리미엄 과일로 꼽힌다. 일반 블루베리보다 아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충남 청양에서 김성훈 파트너가 생산한 ‘김성훈 대추토마토’는 크기가 작지만 단맛이 강한 게 특징이다.


약 10년 전만 해도 ‘수입 과일이 곧 프리미엄 과일’로 여겨지던 것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과일 품종을 개발해 명품화하는 시도는 전국 곳곳에 확산하고 있다. 국산 딸기 품종이 설향, 죽향, 베리스타, 킹스베리, 아리향, 만년설, 메리퀸 등으로 다양해진 게 대표적이다. 2005년 전체의 9.2%에 그쳤던 국산 딸기 재배 면적은 현재 95%를 넘는다. 전남 담양에서 개발한 프리미엄 딸기인 죽향은 500g짜리 한 팩에 2만5000원에 팔린다.

물 건너온 ‘해외파’ 프리미엄 과일 중에서는 ‘델라웨어 포도’가 유명하다. 델라웨어 포도 역시 당도가 높은데 씨가 없어서 먹기 편하다. 미국산 ‘큐티스 만다린’은 한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껍질을 벗기기 쉽다. 일반 감귤보다 달콤하다. 이 밖에 감귤류 형태의 호주 과일인 ‘핑거라임’은 새콤달콤한 맛과 시트러스 향이 매력적이다. 車 부품업체까지 ‘프리미엄 딸기’청과업계에선 프리미엄 과일 강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층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가격과 상관없이 소비를 통한 만족감에 중점을 두는 소비 행태를 뜻하는 이른바 ‘나심비’(나+심리+가성비)가 유행하고 있다”며 “신품종을 더 발굴하는 데 신경 쓸 것”이라고 했다.

자녀 영양 간식으로도 마니아층이 두텁다. 주부 하모씨(44)는 “한 통에 1만원인 ‘단마토’는 일반 토마토보다 두 배 비싸지만 딸이 워낙 좋아해서 자꾸 사게 된다”고 말했다. 단마토는 토마토에 스테비아 성분을 가미해 단맛을 높인 상품이다.

프리미엄 딸기 재배에 뛰어든 자동차 부품업체도 있다. 지난해 전북 무주 해발 500~600m 고도에 2479㎡ 규모 스마트팜을 조성해 ‘설향 딸기’를 재배 중인 나봄농원이 주인공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동해금속은 지난해 신사업팀을 꾸려 나봄농원을 만들었다.

이곳에선 딸기 재배에 가장 좋은 온도와 습도, 햇빛 등을 스마트팜 센서로 관리한다. 설향 딸기의 기본 당도(10브릭스)보다 높은 13~15브릭스를 구현한다. 1㎏ 가격은 8000~9000원. 초기 연간 생산량은 8t이다. 조영환 나봄농원 생산자는 “요즘 소비자는 하나를 먹어도 맛있고 좋은 과일을 먹겠다는 성향이 강하다”며 “프리미엄 과일 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 보고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김천에서 샤인머스캣 등을 생산하는 김경진 녹색농장영농조합법인 차장은 “지난해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샤인머스캣을 안 심은 농가가 없을 정도로 프리미엄 과일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거봉 재배량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올해는 더 달콤해진다다음달엔 또 다른 프리미엄 과일들을 맛볼 수 있다. 6~9월엔 경산 ‘신비복숭아’, 천안 ‘수신멜론’, 공주 ‘토파즈 블루베리’, 김천 ‘마이하트 포도’ 등이 판매대에 오른다. 신비복숭아는 외형은 천도복숭아처럼 단단하고 과육은 백도처럼 하얗고 부드럽다. ‘신비로울 정도로 맛있다’고 해서 이름이 신비복숭아다. 롯데백화점은 고창 기네스북에 등록된 ‘나무 한 그루에 4000송이가 달리는 신비한 포도’도 프리미엄 이색 과일로 판매할 계획이다. 김경진 차장은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작년보다 더 달콤한 과일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프리미엄 과일의 단맛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하루이틀 실온에 두고 후숙했다가 먹으면 당도가 올라간다. 싱그럽고 아삭한 식감을 원한다면 구매한 당일 먹는 게 좋다. 김철용 신세계백화점 신선식품팀 과장은 “냉장고에 잠시 넣었다가 먹으면 당도와 식감, 풍미를 잘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