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기업] 40兆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 시장 노리는 이오플로우

입력 2021-05-24 11:11
수정 2021-07-09 15:54
<p> ≪이 기사는 05월 24일(11:11)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매체 ‘한경바이오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재진 이오플로우 대표는 반도체 벤처기업 출신이다. 198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간 모토로라,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오플로우를 창업하기 직전에는 반도체 냉각 기술 벤처를 직접 운영했다.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라는 의료기기와 반도체 사업의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펌프’. 스마트폰 발열을 줄이기 위한 펌프를 찾던 과정에서 인슐린 펌프 기술을 양도받은 게 이오플로우의 시작이었다.

이오플로우가 올해를 기점으로 웨어러블(착용형) 인슐린 펌프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지난 4월부터 휴온스를 통해 자사가 개발한 ‘이오패치’를 국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유럽, 미국 진출도 앞두고 있다. 세계 1위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 회사인 미국 인슐렛을 5년 안에 따라잡는 게 목표다.

“5년 안에 인슐렛 따라잡을 것”
이오패치는 국내 최초의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다. 세계적으로도 미국 인슐렛의 ‘옴니팟’에 이어 두 번째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오패치는 복부 등 피하지방이 많은 신체 부위에 패치를 부착해 사용한다. 컨트롤러에 혈당 수치, 탄수화물 섭취량 등을 입력하면 알아서 인슐린 주입량을 계산하고 패치를 통해 약물을 주입한다. 펜형이나 주사기보다 사용이 편리하고, 별도의 주입선이 없어 다양한 활동에도 제약이 없다.

‘일체형’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기존에 유럽의 로슈, 일본의 데루모 등이 개발한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는 일부 부품만 빼서 버리는 ‘조립형’이었다. 교체할 때마다 부품을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에 비해 이오패치는 전체를 붙였다가 버리는 일체형이기 때문에 사용이 편리하다. 조립 부품 개수를 최소화해 크기가 작고 무게도 가볍다.

지금까지 이 시장은 인슐렛이 거의 독점해왔다. 세계에서 연간 25만 명의 당뇨 환자들이 인슐렛의 옴니팟을 사용한다. 김 대표는 이오패치가 옴니팟과 겨룰 만한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본다. 웨어러블 약물 펌프의 성능은 ‘구동부 기술’에서 갈린다. ‘웨어러블’이라는 특성에 맞게 가벼워야 하고, 전력 효율성이 높으면서 안전성까지 갖춰야 한다. 인슐렛이 지금까지 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할 만한 구동부를 만드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오플로우는 배터리 효율성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이오패치의 구동부에 해당하는 ‘이오펌프’는 옴니팟보다 전력 효율성이 뛰어나다. 옴니팟은 기계식으로 움직인다. 형상기억합금(shape memory alloy)으로 만들어진 구동부에 열을 가하면 ‘ㄷ’ 자 모양의 와이어가 앞뒤로 움직인다. 이 와이어가 펌프를 당겼다 밀었다 하며 약물이 주입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이오펌프는 전기화학식이다. 다공성 전극이 들어있는 펌프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전하가 이동하면서 펌프 안에 있는 물을 움직이고, 이 물이 왔다 갔다하며 피스톤을 움직인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옴니팟보다 배터리 소모량이 25~30% 감소한다. 옴니팟은 배터리 3개로 3일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오패치는 배터리 2개로 3.5일을 쓸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만 교체하면 되는 셈이다. 매번 같은 요일에 정기적으로 교체할 수 있어 사용 편의성도 높다.

이오플로우는 이 같은 효율성을 앞세워 인슐렛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다. 김 대표는 “인슐렛이 이미 웨어러블 펌프 시장을 열었기 때문에 인슐렛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5년 안에 25만 명의 고객을 확보해 인슐렛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고 말했다.


올가을 유럽 진출…신(新)시장에도 속도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이오패치는 지난 4월 말 유럽인증(CE)을 위한 현장실사를 마쳤다. 5월 말까지 CE를 획득하겠다는 계획이다. 빠르면 올해 9월 유럽에 이오패치를 판매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탈리아의 제약사 메나리니를 통해 유럽 17개국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 기업과도 판매 계약 체결을 두고 논의 중이다. 메나리니처럼 특정 회사에 판권을 넘겨 진출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중국, 중동 등 인슐렛이 진출하지 않은 ‘신 (新)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김 대표의 목표 중 하나다. 특히 중국은 현지 회사와의 조인트벤처(JV) 형식을 택할 계획이다. 빠르면 올해 안에 JV 파트너사를 발표하고, 2~3년 내로 제품을 중국시장에 내놓겠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는 “인슐린 펌프 시장은 공급자 우위 시장이기 때문에 여러 국가의 제약사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인슐린 펌프 시장 규모는 2017년 118억 달러(약 13조 원)에 서 2025년 229억 달러(약 26조 원)로 2배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여기에 비인슐린 펌프 시장 규모(2021년 기준 약 11조 원)를 더하면 전체 약물 펌프 시장은 40조 원에 달한다.

당뇨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한번 제품을 쓰면 오랜 기간 사용해 꾸준한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다. 최근 인슐린 분비가 전혀 되지 않는 1형 당뇨뿐 아니라, 체내 인슐린 분비량이 부족한 2형 당뇨 환자들 중에서도 웨어러블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이오플로우에게 호재다.

인공췌장·비당뇨 약물로 보폭 넓혀
이오플로우의 중장기적 목표는 ‘일체형 웨어러블 인공췌장’ 개발이다. 인공췌장은 인슐린 펌프에 연속혈당측정센서를 결합한 것이다. 현재 이오패치는 사용자가 직접 혈당을 측정해 수치를 입력해야 하지만, 인공췌장 솔루션은 혈당 측정부터 약물 주입까지 알아서 해결해준다. 이오플로우가 일체형 웨어러블 인공 췌장 솔루션 상용화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가 된다. 인슐렛도 분리형을 개발하고 있을 뿐, 일체형을 개발하고 있는 건 이오플로우가 유일하다.

비당뇨 약물로도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이오플로우는 약물 펌프 기술을 바탕으로 진통제, 항암제, 성장호르몬제 등 인슐린이 아닌 다른 약물 주입으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제약사들이 개발하고 있는 신약 중 반감기가 짧은 약물이다. 약물 효과는 인정받았지만 지속시간이 짧아 꾸준히 투입해야 하는 약물을 웨어러블 펌프를 통해 손쉽게 주입한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미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거나 특허가 만료된 피하주입제 가운데 꾸준히 주입하면 새로운 효능을 볼 수 있는 제품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를 위해 이미 여러 제약사들과 협의가 진행 중이다.

글로벌 수요는 이미 검증됐다. 인슐렛도 글로벌 제약사 암젠의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뉴라스타에 주입 시스템을 납품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사업이 인슐렛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만큼 큰 시장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웨어러블 약물 주입기가 확장성이 큰 분야인 만큼 다양한 약물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제약사, 바이오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5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