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메모리 분야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11일 열린 '미중 반도체 분쟁과 한국반도체 대응전략' 긴급토론회에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 범진욱 반도체공학회장,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강창진 세메스 사장, 이윤종 DB하이텍 부사장, 안현실 한경AI경제연구소장(한국경제 논설위원)이 참석했다.
토론회에서 황 교수는 "최근 인텔이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하고, 마이크론이 176단 낸드플래시를 개발하는 등 한국의 반도체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며 "메모리는 우리가 1등이라는 전제를 다시 생각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삼성전자는 TSMC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대만이라는 한 국가와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국가 인프라 차원에서 바라보고,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김형준 교수는 "미국은 반도체를 안보적 측면에서 바라보고있으며 일종의 전략물자로 보고 있다"며 "반도체가 국가 경쟁력 및 산업 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메모리 분야에 소홀해왔지만 한국이 자칫하다가는 1위 타이틀을 뺏길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종호 소장은 "메모리는 가만히 놔둬도 잘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메모리 기술에 더 집중한뒤 그 경쟁력을 바탕으로 컴퓨팅 메모리반도체 등 시스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개발(R&D) 지원을 다양한 분야에 조금씩 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창진 세메스 사장은 "반도체 장비 하나를 개발하는 데만 5000억원~1조원 규모의 투자가 들어간다"며 "수십억 단위 국책과제 여러개를 수행한다 해도 그 중에서 하나라도 실제 쓸만한 연구가 나오기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안현실 소장은 규제개혁 등 노력도 뒷받침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 하나 짓겠다고 하면 온갖군데서 몰려와 '한 건' 잡은 것처럼 생떼를 쓴다"며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전에 문화와 행정절차 등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고 했다.
이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