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박세리’ 에리야 쭈타누깐(26·사진)이 역전패를 당했던 악몽의 코스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3년간 이어진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쭈타누깐은 9일 태국 촌부리 시암CC 파타야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총상금 160만달러) 최종라운드에서 버디만 9개를 몰아쳐 9언더파 63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22언더파 266타를 친 그는 막판까지 추격해온 태국의 후배 아타야 티티쿨(18)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섰다.
이로써 쭈타누깐은 2018년 7월 여자 스코티시오픈 이후 약 3년 만에 LPGA투어에서 우승했다. 투어 통산 11승째다. 우승상금은 24만달러(약 2억6800만원).
쭈타누깐은 300야드 남짓한 ‘남자 선수급’ 비거리로 한때 LPGA투어 무대를 평정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10승을 쓸어 담아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으나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더 많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종종 당했던 ‘역전패’의 피로가 심리적으로 누적된 모습이었다.
특히 이 대회는 쭈타누깐이 2013년 한 홀을 남기고 2타차 선두였다가 마지막 홀 트리플 보기로 우승컵을 빼앗긴 곳이다. 당시 우승컵은 박인비(33)가 가져갔다. 그는 2016년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도 세 홀을 남기고 2타 앞선 선두였다가 조연으로 밀려났다.
선두 패티 타와타나낏(21·태국)에게 5타 뒤진 9위로 출발한 쭈타누깐은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전반에만 6타를 줄이더니 12번홀(파3)까지 2타를 더 줄여 단숨에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파 행진을 이어가다 마지막 18번홀(파5)에선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뒤 버디를 낚아채 공동 선두로 먼저 경기를 마쳤다.
티티쿨은 16번홀(파3)까지 22언더파를 쳐 먼저 경기를 끝낸 쭈타누깐보다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17번홀(파4)에서 보기로 한 타를 까먹었고 마지막 18번홀(파5)에선 약 2m 거리의 파 퍼트까지 놓쳐 쭈타누깐의 우승이 확정됐다. 18번홀에서 티샷한 뒤 낙뢰를 동반한 구름 때문에 찾아온 약 30분간의 휴식도 티티쿨에겐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요소로 작용했다.
2003년생으로 아직 10대인 티티쿨은 준우승으로 자신의 이름을 LPGA투어에 확실히 각인했다. 티티쿨은 나흘 평균 280야드가 넘는 드라이브 비거리를 기록했다. 2라운드까지 이글 세 개를 낚아챈 것도 세계 정상급 장타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나흘간 평균 퍼팅도 28개로 막아 그린 위에서 강한 모습을 뽐냈다.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가 주무대인 그의 LPGA투어 데뷔가 ‘시간 문제’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는 이번에 초청 선수 신분으로 뛰었다.
투어 통산 4승 중 3승을 이 대회에서 거둘 정도로 태국에서 강했던 양희영(32)은 태국 선수들의 활약에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다. 공동 10위로 출발한 그는 이날 버디 9개와 보기 1개를 묶어 8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했다. 그러나 역전에는 타수가 부족했고 20언더파 공동 3위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동타를 기록한 유소연(31)도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