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사진)이 몸담은 학현학파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성장담론을 비판하는 등 일전을 벌일 채비다.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명예이사장(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을 따르는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학자들의 모임이다. 반면 KDI는 혁신과 성장을 우선하는 만큼 경제철학이 상반된다. 학현학파의 비판은 홍장표 전 수석의 KDI 신임 원장 내정설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의 ‘성장 정책의 허상과 경제정책의 과제’ 논문에는 2018년 발간된 KDI ‘혁신성장의 길’ 보고서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중해 경제정보센터 소장을 비롯한 11명의 KDI 연구진이 참여한 보고서는 경제성장을 위해 기업의 혁신을 끌어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원 교수는 KDI 보고서가 제시한 혁신성장이 과거 개발체계를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고서에 대해 “혁신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과거 개발체계 경제정책 논리와 다를 바 없다”며 “국가를 국민에 우선하고 기업 성공이 전체 경제에 기여한다는 낙수효과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 삶의 질은 무시되는 것이 KDI가 주장하는 혁신성장의 실체”라고 지적했다.
기업이 혁신성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KDI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원 교수는 “경제 성장에 따라 기득권을 가진 기업과 계층이 경쟁체계를 막아 경제 성장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경제성장 정책으로 단기에 성장률을 높인다는 사고는 탈피해야 한다”며 “경제정책의 핵심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바탕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자는 KDI 한국은행 등 주류 경제학계의 성장담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원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인 홍장표 전 수석과 함께 학현학파 주축으로 통한다. 두 사람은 학현학파 학자들과 자주 토론하며 ‘실사구시 한국경제’, ‘경제불평등과 금융부채’ 등의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원 교수와 학문적으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홍 수석이 KDI 새 원장으로 임명된 직후 KDI 연구 방향에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학현학파와 상반된 KDI 성장담론을 손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 같은 우려는 KDI 출신 원로 연구자들의 공동 성명으로 이어진 바 있다. 최광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등은 지난 3월 홍 전 수석의 KDI 원장 임명을 반대하며 “전대미문의 정책으로 경제를 파괴하고 민생을 질곡에 빠뜨린, 경제원론적 통찰력도 부족한 인사”라며 “망국적 경제정책 설계자가 KDI 수장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원승연 교수와 홍장표 전 수석를 비롯한 학현학파는 오는 14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심포지엄을 열고 성장담론과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해 평가하고 토론할 계획이다.
김익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