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3사가 주가 부양에 힘 쏟고 있다. 통신 기업 이미지를 벗고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포석이다. 자사주 매입·소각부터 콘텐츠 사업 강화까지 비(非) 통신 부문을 강화해 투자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전략이다.자사주, 소각하거나 매입하거나
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최근 자사주 958만5568주의 90.6%에 해당하는 868만5568주를 소각했다. SK텔레콤 주식 8074만5711주 중 10.8%에 달하는 규모로 전날 종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2조6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국내 4대 그룹 자사주 소각 중 발행 주식 총수 대비 물량으로는 최대, 금액으로는 삼성전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소각 후 SK텔레콤의 자사주는 90만주로 줄어들었다. SK텔레콤 측은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취득한 자기주식을 이사회 결의에 의해 소각하는 것으로 주식 수만 감소하고 자본금 감소는 없다고 밝혔다.
통상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보유한 자사 주식을 소각해 유통 주식수를 줄여 주주들이 보유한 기존 주식 가치를 상승하는 효과를 낸다. 이번 자사주 소각은 지난달 인적분할 추진 발표에 이어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SK텔레콤의 의지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
KT는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섰다. KT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약 5000억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했다. 구현모 KT 대표는 지난해 취임 이후 약 9000주를 추가 자사주 매입했으며 올해 4월 기준 약 2만3563주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KT는 지난해 5월 국내외 주요 투자자를 초대해 기업설명회를 열고 3년간 중장기 재무 목표와 배당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KT는 별도 기준 조정 순이익의 50%를 배당하겠다는 주주환원 정책을 밝혀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다수 증권사에서 KT가 공표한 주주환원 정책이 주가 상승에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T는 2020년 연간 실적 발표를 통해 전년보다 22% 증가한 주당 배당금(1100원→1350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KT의 배당 수익률은 5% 중후반으로 전망된다. KT는 주주들과 계속 소통하며 신뢰를 구축하는 등 진정성 있는 주주환원 노력을 펼치겠다는 방침이다.
LG유플러스 역시 황현식 대표가 지난달 12일 자사 주식 2만5000주(약 3억1500만원)를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황 대표는 종전까지 자사주 2만800주를 매입했으며 이번에 2만5000주를 추가 매입해 총 4만5800주를 보유하게 됐다. 주식 매입은 회사 성장에 대한 의지를 시장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언택트 국면서 통신3사 철저히 배제돼
기업 경영진이 회사 돈을 들이거나 사재를 출연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건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대표적 경영 행위로 꼽힌다. 투자자들에게 확신을 줘 추가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통신3사가 이처럼 세일즈에 적극 나선 이유는 시장이 통신업 자체가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어서다.
지난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면 속에서 네이버, 카카오 같은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들이나 엔씨, 넥슨, 넷마블 등 게임 기업들은 언택트(비대면) 수혜를 입어 주가가 크게 뛰었다. 하지만 과거 대표적 언택트 업종이었던 통신사들은 이런 흐름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때문에 통신업계는 매출 규모나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통신사들은 전통적으로 무선통신 사업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려왔다. 하지만 국내 무선통신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무선 통신서비스 통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내 휴대폰 가입자 수는 7048만5960명으로 인구 수를 훌쩍 넘었다. 통신3사끼리 가입자를 빼앗아 오는 제로섬 게임으로는 더 이상 투자자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주가 부양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통신업은 대표적 규제산업으로 꼽힌다. 통신사들은 각종 부가 서비스가 추가된 5G 요금제 가입자를 많이 확보해야 ARPU(가입자당 평균매출)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요금제는 정부 규제를 받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결국 통신사들은 '성장 없는 경쟁'과 정부 규제 바깥에서 주가 부양 동력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 통신3사는 올해 하나같이 '탈통신'을 강조하며 콘텐츠 확보에 전사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천명한 이유다."통신사 간 경쟁 이제 그만…네이버·카카오·구글과 붙어야"
실제로 SK텔레콤은 미디어·보안·커머스·모빌리티에서 성장을 꾀하기로 했다. 비통신 사업 부문은 SK브로드밴드·콘텐츠웨이브(미디어), ADT캡스·SK인포섹 합병법인(보안), 11번가·SK스토아(커머스), 티맵모빌리티 등 전문 자회사들이 맡고 있다. 특히 2020년 12월 분사한 티맵모빌리티가 올해 카카오모빌리티와의 경쟁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가 관건이다.
KT는 웹소설·웹툰 전문기업인 스토리위즈와 멀티플프로그램프로바이더(MPP) 채널인 스카이티브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즌',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지니뮤직 등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룹 내 미디어 콘텐츠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올해 초 설립한 KT스튜디오지니는 원천 지식재산권(IP) 확보부터 콘텐츠 제작에서 유통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밸류체인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KT스튜디오지니를 중심으로 국내 제작사들과 상생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해 2023년까지 원천 IP 1000개 확보, 오리지널 콘텐츠 100개 이상 제작을 목표로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성장 엔진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주가 부양을 위해 KT는 이례적으로 올해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홍보실 산하에 '기업가치홍보팀'까지 신설했다.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KT 본연의 기업가치를 시장과 투자자에게 적극 알려 주가에 제대로 반영하자는 취지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된 신규사업 추진 부문에 힘을 싣고 있다. 그동안 LG유플러스는 IPTV에서 국내 통신사 중 가장 먼저 넷플릭스와 손잡았고 키즈 콘텐츠도 적극 선보였다. 황 사장이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과 올해는 국내 주식 시장이 역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며 "콘텐츠 소비가 가장 높은 세대인 20~30대들이 주식 시장에 관심을 가졌을 때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사 내부에서는 이제 '통신'이라는 말도 쓰지 말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라며 "우리끼리 경쟁하지 말고 네이버, 카카오, 구글과 맞붙어야 시장에 긍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