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매출 0' 회사를 10억달러에 인수한 저커버그의 도박

입력 2021-05-10 09:00

미러만 보고 운전할 수는 없다. 내부 데이터에만 의존해 기업을 경영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외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재무 지표와 같은 내부 데이터 분석에만 매달린다. 이는 매우 수동적인 방식이다. 빠른 변화가 수반되는 디지털 시대의 내부 데이터는 과거에 대한 결과를 의미할 뿐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근거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후행 데이터로서의 내부 데이터21세기 초반 인터넷 시대가 오면서 기업들이 데이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문제는 분석할 데이터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지하실에 처박혀 있거나 종이에 기록돼 있어 사용할 수 있는 형식이 아니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다음으로 유명한 래리 엘리슨의 오라클이 급성장한 시기도 이쯤이다. 그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개발해 내부 데이터를 디지털화했다. 2016년 포천 500대 기업의 98%는 오라클의 고객이었다.

문제는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ERP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내부 데이터에 대한 효율적인 접근은 언제나 중요하다. 하지만 ERP 시스템은 과거 사건에 기반한 후행 데이터라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내부 데이터는 아주 세밀한 단위까지 내려가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얻은 통찰은 여전히 과거에 관한 것이다. 미래 전략 수립을 위한 경쟁 기업의 최근 투자 혹은 산업 동향에 관한 정보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2000년대 초반 모바일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블랙베리의 몰락은 내부 데이터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블랙베리의 공동 최고경영자(CEO) 마이크 라자리디스와 짐 발실리는 2007년 1월 애플의 아이폰을 처음으로 봤다. 아이폰을 본 뒤 그들이 얻은 첫 번째 느낌은 자신감이었다. 가격과 배터리, 기능 면에서 블랙베리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지만 미국 시장 점유율 55%,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기록하던 2009년 1분기까지만 유효했다.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2년이 채 지나기 전에 미국 시장 점유율이 12%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던 것은 외부 환경 변화에 둔감했기 때문이다. 내부 데이터에 의하면 2009년 급격한 점유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2011년 블랙베리는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분명 블랙베리의 성장은 인상적이었지만, 실물 키보드와 보안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경쟁자를 보지 못했다. 전망을 위한 외부 데이터페이스북은 달랐다. 50억달러의 기업공개(IPO)를 통한 기업가치 1000억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던 페이스북의 CEO 저커버그는 2012년, 단 한 번도 매출을 일으켜본 적이 없고 비즈니스 모델도 없던 직원 13명의 회사를 무려 10억달러에 인수했다. 앱 출시 2개월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넘어섰고, 순식간에 기업가치 5억달러를 기록한 인스타그램 이야기다. 당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주주와 이사들로부터 독단적인 처리로 가치에 비해 과도한 비용을 들였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인수 당시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2700만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수 후 3년이 지난 시점에 사용자 수는 4억 명에 육박했으며, 2016년 사진공유를 통한 매출은 20억달러에 달했다. 인수하지 않았다면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됐을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애널리스트 보고서에서 저커버그의 인스타그램 인수는 ‘역사상 최고의 도둑질’로 평가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산업생태계에 대한 인식 필요저커버그가 선제적인 인수를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앱 애니와 같은 외부 온라인 데이터를 통해 인스타그램의 사용자 수가 급증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증시 상장으로 정신없던 시기였지만, 외부 데이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인스타그램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당시 내부의 재무 지표만을 살폈다면 새로운 경쟁자 출현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현실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됐다. 소통하고, 쇼핑하고, 은행을 이용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생성된다. 더 많은 영역이 디지털로 전환될수록 더 많은 데이터 흔적들이 발생한다. 현대의 기업경영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ERP 등 내부 데이터에 기반해 이뤄졌지만, 이른 시일 안에 외부 데이터에서 얻은 통찰이 이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이는 의사결정의 축이 운영의 효율성에서 산업 흥망과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로 옮겨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범위한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게 된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