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오너 떠났지만…개미들은 주식 20억어치 사들였다 [이슈+]

입력 2021-05-07 09:14
수정 2021-05-07 09:39

남양유업의 오너리스크가 해소될 수 있을까.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불가리스 논란 속에 경영권 승계 포기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히면서 주가도 수직 상승중이다. 하지만,홍 회장을 포함한 가족이 지분의 과반수 이상을 보유한 상태여서 실질적 지배력을 해소하는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홍 회장은 남양유업 주식 51.68%(37만2107주)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부인인 이운경(0.89%)씨, 동생 홍명식(0.45%)씨, 손자 홍승의(0.06%)씨 지분까지 합치면 총수 일가의 지분은 총 53.08%에 달한다. 보통 시장에서는 절반 이상을 총수일가가 보유하는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우려 없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경영권이라고 평가한다.

홍원식 회장은 지난 4일 서울 논현동 본사 3층 대강당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지난달 13일 불가리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 연구결과를 발표한 후 불매운동이 일고 세종공장 영업정지 위기까지 겹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후 오너리스크가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주식시장에 퍼지면서 남양유업 주가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홍 회장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개최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진 지난 3일부터 남양유업의 주가는 올랐다. 누적된 상승률만도 20.34%에 달해 주가는 38만7500원까지 치솟았다.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점이 눈에 띈다. 지난 3일부터 전날까지 개인은 20억원 순매수한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5억원, 5억원 순매도했다.

시장 안팎에서는 홍 회장의 사과와 경영권 승계 포기가 남양유업의 지분구조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홍 회장은 기자회견 당시 '경영권'만 언급했을 뿐 53%가 넘는 '지분' 매각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 홍 회장을 포함한 가족들은 여전히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홍 회장의 장남 홍진석 상무는 회삿돈 유용 등의 이유로 지난달 보직해임 됐지만, 여전히 등기이사인 상태다.

일각에선 이처럼 그룹 오너의 지위에는 사실상 큰 변동이 없다는 점을 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고발 및 경찰 압수수색, 세종공장 영업정지 위기까지 겹치자 '전격 퇴진'을 발표했다고도 보고 있다. 위기 모면과 국면 전환을 위한 '여론 무마용 카드'라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남양유업의 경영 쇄신안이 늦어질수록 회사가 입는 타격은 커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시장의 기대와 달리 최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이 여전할 경우, 주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홍 회장이 사내이사까지 물러나 표면적으로 남양유업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더라도 여전히 최대주주인 점과 아들인 홍진석 상무가 경영진으로 활동 중인 점 등을 들어 남양유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남양유업 법인 등기상으로 홍 회장은 아들인 홍진석 상무와 더불어 등기이사로 올라 있다. 기획마케팅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 상무는 지난달 불가리스 사태와 회삿돈을 유용한 의혹으로 보직 해임된 상태다. 홍 상무는 회사 비용으로 고급 외제차를 빌려 자녀 등교를 시키는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남양유업의 오너리스크를 해소하는데 장기간이 소요돼 단기간의 주가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2017년 미스터피자 운영사 MP그룹의 정우현 전 회장 갑질 논란 이후 회사를 매각하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바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소비자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가맹점과 실적에 타격을 줬다.

업계 관계자는 "홍 회장이 자식들에게 기업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회장 일가가 보유한 53.08% 지분은 처분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면서도 "홍 회장 일가가 경영권에서 손을 떼기까지도 여러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여 실제로 오너리스크를 덜기까지는 예상보다 장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