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산업이 취약했던 마지막 퍼즐(신약 특허)이 맞춰졌다.”
바이오업계는 6일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보호 유예 추진의 의미를 이같이 평가했다.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용량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시설이 있는 한국이 백신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백신 위탁생산은 반도체 파운드리와 비슷한 기반 산업이다. 한 CMO회사 대표는 “특허가 끝난 바이오의약품을 복제해 만드는 바이오시밀러 분야 세계 1, 2위(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도 한국 기업이어서 이들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 백신 CMO 기지 부상 가능성
이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에 진입한 국내 기업은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 셀리드,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등 다섯 곳이다. 하지만 임상 단계는 아직 1~2상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유럽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공고히 쌓은 특허 장벽을 피해 개발에 나서다 보니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아서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독일 등 바이오 강대국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가 풀릴 경우 업계 판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장에 나온 백신을 복제한 제품을 임상 과정을 거쳐 출시하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바이오업계에선 한국 CMO 업체가 글로벌 바이오 시장의 ‘신데렐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CMO 업체는 고객이 의뢰한 대로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한다. 한 CMO 회사 대표는 “노바백스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두 백신을 바로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십자 바이넥스 이수앱지스 한국코러스 등 한국 CMO 회사의 생산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5대 회계법인인 BDO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CMO 총생산량(배양액 기준)은 38만5000L로 세계 2위다. 세계 1위는 미국으로 48만6000L의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오 강국인 독일과 덴마크는 각각 24만6000L와 14만4000L 수준이다. 다만 미국은 대부분 생산시설이 코로나19 백신 수요로 꽉 차 있는 상황이다. 만약 추가 생산이 필요할 경우 한국 기업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바이오 벤처회사들은 보통 생산 공장을 따로 두지 않는다. 공장을 짓고 유지하는 데 비용을 쓰기보다는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을 대신 생산하고, 판권까지 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더나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백신은 스위스 CMO 전문회사 론자의 미국과 스위스 공장에서 생산한다. 생산 규모는 연 수억 회분이다. 생산된 의약품 원액을 바이알(주사용 유리 용기)에 넣는 완제 공정은 미국 캐털런트가 맡고 있다. 유럽 지역은 스위스, 미국 등 아메리카 지역은 미국이 생산기지인 셈이다. 셀트리온, 백신 개발 나설까업계에선 ‘K-코로나19 백신’ 생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을 복제해 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 회사들이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세계 1위 바이오시밀러 회사인 셀트리온의 진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서정진 명예회장은 올초 “한국의 기술주권 차원에서 백신사업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mRNA 백신보다는 단백질 재조합 방식의 백신 개발에 국내 업체들이 대거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은 인플루엔자, B형간염 백신 등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국내에 전문가도 많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은 바이러스와 항원 단백질만 분리해 몸에 넣는 전통의 백신 개발 방식이다. 한 CMO 대표는 “mRNA 백신 기술력은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며 “생산 노하우 등을 쌓아 대량 생산하는 데 최소 1년은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김우섭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