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이 제 기능을 하려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배후도시의 풍부한 인구, 인바운드 수요를 창출하는 비즈니스와 관광의 매력성, 그리고 환승이 집중되는 네트워크, 세 가지다. 이 중 하나라도 확실하면 공항은 성공한다. 길목이 성패를 가르는 공항산업의 특징이다. 가덕도 신공항의 경우엔 이게 문제다. 김해공항의 중국 민항기 사고 이후 20년째 선거철마다 정치권이 이용하고 있고 지역민들은 대박의 환상에 빠졌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간 유치경쟁으로 공항의 입지를 정하는 건 그래서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의 공항설계기관 ADPi가 용역을 맡아 신공항의 후보지를 결정했다. 그들은 국제적 표준에 따라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새로 만들어 수용력을 확장하고, 안전성을 확보할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지난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그 결정이 뒤집혔다. 여야는 가덕도특별법을 만들었고, 정부는 김해신공항을 아예 백지화했다. 내년 대선이 다가오면 가덕도는 이제 ‘희망의 땅’을 약속할 것이다. 가덕도엔 정말 제대로 된 공항이 가능한 걸까. 부·울·경에선 이미 가덕도 신공항 기술위원회를 구성했고, 국토교통부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전타당성 검토를 곧 시작한다.
그런데 가덕도에 삽질하기 전에 분명히 따져야 할 게 있다. 그간의 결정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말이다. 꼼꼼히 검토할 건 그간의 평가내용이다. 괄호 안의 숫자(가덕도 : 김해공항)는 5점 만점으로 평가했던 점수다. 이걸 뒤집는다면 ADPi의 보고서가 잘못된 것이다.
첫째, 안전한 운항을 위한 운영상의 고려사항이다. 주변 공역을 고려했을 때 처리 가능한 활주로의 시간당 교통량(3.13 : 3.69), 이착륙 절차를 고려한 공항 간의 공역 활용도(2.00 : 5.00), 활주로의 체공선회가 상호 간섭을 받는 장주비행 여건(2.9 : 4.5), 선박 높이 50m 이상인 선박 수로의 영향(4.0 : 5.0), 이착륙을 위협하는 측풍의 영향(4.35 : 4.9), 지진, 해일, 지반공학적 위험 등 자연재해의 영향(0.78 : 2.75)은 모두 가덕도가 김해공항의 점수보다 낮았다.
둘째, 전략적 고려사항이다. 주민 10만 명 이상 배후도시의 접근성(2.7 : 4.1), 공항도시 개발을 위한 토지 가용성(2.65 : 3.45), 공항까지 도로의 접근성(2.22 : 3.31)과 철도의 접근성(2.06 : 4.15)도 모두 가덕도의 점수가 현저히 낮다.
셋째, 사회·경제적 영향으로 신공항 부지 인근의 10개 이상 문화유산(0 : 2.5), 부지 매립으로 지역경제에 미치는 손실(0 : 4.09), 동식물 생태계의 훼손(0 : 1.875), 야산 절개·절단에 따른 지형과 경관의 변경(2.0 : 5.0)에선 가덕도의 점수가 모두 최악이다.
넷째, 비용과 사업위험에 대한 사항이다. 보상비와 부지조성을 위한 사업비(2.97 : 5.0), 정치적 개입, 소송과 법적 조치로 인한 사회적 불확실성(1.25 : 4.5), 부지조성과 부동침하, 장애물 등 기술적 불확실성(0.75 : 3.0), 교통량 감소에 따른 규모의 조정 가능성(0.75 : 3.0) 역시 가덕도는 김해공항과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가덕도는 2016년 ADPi의 후보지 평가에서 밀양보다도 낮아 꼴찌였다. “가덕도는 자연공항 후보지가 아니므로 높은 공사비, 시공 리스크, 산지 절토와 매립으로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미침. 김해공항과 근접해 항공교통에 문제가 발생하고 지역민 생업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함.” 당시 국토부가 내린 사전타당성조사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런데 출근 첫날 박형준 부산시장은 추진할 뜻을 재차 밝혔다. 약속과 신뢰를 버린 건 정치와 정책이다. 가덕도특별법은 총리실이 주관했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보고서가 출발점이다. 그 보고서의 뒤바뀐 결론부터 검증해야 한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풀어야 한다. 이걸 짚어보지 않고 삽질을 시작하면 가덕도는 재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