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박수칠 때 떠나는 박찬구

입력 2021-05-04 17:42
수정 2021-05-05 02:42
금호석유화학이 올 1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지난해 영업이익의 82%를 한 분기에 벌어들였다. 합성고무, 합성수지, 페놀유도체 등 사업 전 영역에서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회사가 ‘역대급 실적’을 공개한 4일 박찬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결정을 했다. ‘박수 칠 때 떠나는’ 모양새가 됐다. 금호석유화학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다.

또 어닝서프라이즈 기록금호석유화학은 지난 1분기에 매출 1조8545억원, 영업이익 6125억원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분기 역대 최대치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1.3%, 영업이익은 무려 360.2% 증가했다. 1분기 영업이익률 또한 역대 최고인 33%를 기록했다.

시장에선 금호석유화학의 어닝서프라이즈를 예측했지만, 영업이익은 5000억원대일 것으로 봤다.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추정 평균치)도 4200억원가량이었다. 누구도 6000억원 이상을 예상하진 못했다. 지난해에도 하반기부터 시황이 좋아 이익을 많이 거뒀는데, 작년 한 해 벌어들인 이익(7422억원)의 약 82%를 한 분기 만에 달성했다.

합성고무사업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라텍스 장갑의 원료가 되는 NB라텍스 판매가 좋았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라텍스 장갑 판매가 폭증한 영향이다. 라텍스 장갑은 과거 의료용 등 제한된 용도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요식업, 산업용, 가정용 등으로 사용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여기에 타이어 소재(SBR) 업황도 좋아져 전체 이익의 약 절반(2921억원)이 합성고무사업에서 나왔다.

합성수지사업부 실적도 좋았다.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 많이 들어가는 고부가합성수지(ABS)와 배달용기 등에 쓰이는 폴리스티렌(PS)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페인트 원료인 에폭시 등 페놀유도체 부문에서도 2000억원 가까운 이익이 났다.

업계에선 금호석유화학의 실적 개선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올해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는 것은 물론 2조원도 달성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금호석유화학은 사상 최대 실적을 공개하면서 박 회장의 등기이사 및 대표직 사임 소식도 알렸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경영권 분쟁을 겪은 것이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박 회장은 지난 3월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와 경영권을 놓고 주주총회에서 다퉜다. 박 회장은 표 대결 끝에 주주들의 신임을 받아 경영권을 지켜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박 전 상무는 지분 약 10%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로, 올 들어 지분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박 회장 지분은 6.69%로 아들 박준경 전무 지분(7.17%)을 합쳐도 약 14%에 그친다. 지분 약 8%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3월 주총에선 박 회장 손을 들어줘 승리했으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경영권을 지켜낸 박 회장은 이번 기회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것도 퇴임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박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실적이 가장 좋을 때가 최적의 타이밍일 수 있다. 일각에선 추후 경영 복귀 가능성을 열어 놓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법무부의 취업 제한 통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회장은 2018년 배임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집행유예 기간인 2019년 대표로 복귀했다가 법무부로부터 취업 제한 통보를 받았다. 박 회장은 이 결정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안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