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자사주 2.6조어치 소각… 합병설 '차단'

입력 2021-05-04 16:45
수정 2021-05-04 18:27

SK텔레콤이 자사주 2조6000억원어치를 소각한다. 삼성 LG 현대차 SK 등 4대 그룹의 그간 자사주 소각 사례 중 소각 물량 비중이 가장 크다. 주주 가치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그간 일각에서 제기된 SK(주)와 SK하이닉스간 합병설을 불식시켜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텔레콤 "자사주 90% 소각"SK텔레콤은 4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오는 6일에 자사주 869만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발행주식 총수의 10.8%, 기존 보유 자사주의 90.6% 규모다. SK텔레콤은 잔여 자사주 90만주를 사내 성과 보상 프로그램과 기존 스톡옵션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2017~2018년 삼성전자 이후 소각하는 자사주 금액 가치가 역대 두 번째로 높다. 당시 삼성전자는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며 두 차례에 걸쳐 자사주 약 19조원어치를 소각했다. SK텔레콤은 “기업·주주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며 "거버넌스 구조를 좀더 투명하게 하고, 기업가치를 계속 높이겠다는 의미에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SK㈜·SK하이닉스 합병 가능성 '차단'이번 소각은 지난달 SK텔레콤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의 일환이다. SK텔레콤은 인적분할 방식을 통해 회사를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으로 나눈다고 발표했다. 신설기업은 SK하이닉스와 11번가 등을 산하에 두고 반도체, 커머스 등 신사업 확장을 전담한다. SK그룹의 중간지주회사 역할도 신설기업이 맡는다.


통신업계 안팎에선 SK텔레콤이 자사주를 대량 소각함에 따라 SK㈜가 SK텔레콤 신설투자기업을 가까운 시일내 합병할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고 보고 있다. 자사주는 본래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기업이 주주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인적분할 방식을 통해 신설기업을 세우면 존속법인이 가진 자사주만큼 신주가 배정되고, 이때 신주에 의결권이 붙는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다.

이를 활용해 현물출자와 유상증자 등을 거치면 SK㈜는 SK텔레콤 신설기업에 대한 지분율을 기존(26.8%) 대비 두 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 SK㈜가 신설기업을 합병시 대주주 지분이 희석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SK텔레콤은 지난 3월까지 약 반년간 장내 주식을 200만여주 추가 매입했다. 증권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자사주 보유량을 늘리자 대주주 지분율 높이기와 SK하이닉스 합병 가능성 등을 우려한 소액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졌다”며 “올해 중 지배구조 개편안건을 주주총회서 통과시켜야 하는 SK텔레콤이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줘 ‘주주 달래기’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년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율을 기존 20%에서 3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기존 SK하이닉스 지분 20.1%를 보유한 SK텔레콤이 SK하이닉스의 지분율을 그만큼 늘리려면 10조원 가량이 필요할 전망이다. SK텔레콤이 주주총회를 수월히 넘겨 연내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하려는 이유다.

SK텔레콤은 앞서도 “현 시점에서 신설법인과 SK㈜ 합병 계획은 없다”며 “일단 신설 투자기업을 통해 반도체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사주 90% 줄지만…주가는 1% 상승자사주를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어 통상 주가에 호재로 통한다. 이번 소각을 통해 SK텔레콤의 발행 주식 총수는 기존 8074만5711주에서 7206만143주로 줄었다. 이날 SK텔레콤 주가는 발표 이후 52주 신고가(32만2000원)를 기록한 뒤 소폭 밀려 30만7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전일대비 가격이 1.15% 올랐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자사주 매각 가능성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널리 알려진 내용이었기 때문에 발표 당일인 오늘은 차익실현 매물이 많았다"며 "향후 한동안은 이동통신사업(MNO) 기대감과 배당 정책이 주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