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미국 뉴욕 사교계는 애나 델비 스캔들로 들썩였다. 억만장자 상속녀 신분을 내세워 연예계·패션계 셀러브리티(유명 인사)들을 4년간 휘어잡았던 그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술학교를 중퇴하고 패션잡지 인턴으로 일하던 그가 일약 사교계의 스타가 될 수 있던 것은 철저하게 조작된 SNS 계정 덕분이었다. 호화로운 삶의 풍경이 가득한 그의 사진을 보고 아무도 정체를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넬 브라운의 신작 소설 《프리티 씽》(마시멜로·사진)의 두 주인공은 마치 이 가짜 상속녀의 인생을 비루한 진실과 화려한 거짓, 둘로 나눠 쪼개 놓은 것만 같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 세대에게는 꼭 필요한 기술일지로 모른다”는 소설 속 대사처럼 SNS 속 빛나는 삶의 진실을 폭로하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실을 풍자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에게서 도망쳐 어린시절부터 엄마와 둘이서 떠돌이 생활을 했던 니나. 사기를 쳐서 뜯어낸 돈으로 삶을 꾸려나갔던 엄마였지만 딸만큼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게 하고 싶었기에 니나를 대학에 입학시킨다. 하지만 꿈에서조차 갈망하던 예술사학사 학위를 받은 니나에게 남은 건 수십만달러의 학자금 대출과 암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엄마뿐이었다.
또 다른 주인공 바네사는 부동산부터 카지노까지 온갖 사업으로 거대한 부를 이룬 가문의 억만장자 상속녀이자 50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패션 인플루언서다. 자신이 입은 옷을 바느질하는 여성들이 받는 연봉보다 몇 배는 비싼 드레스를 입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그의 직업이다.
SNS에 부를 과시하는 ‘얼간이’들을 상대로 사기 수법을 쓰던 니나에게 어느 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기 시작한다. 니나가 도피처로 택한 곳은 어릴 때의 아픈 상처가 어린 타호호수. 홀로 호숫가 대저택에서 생활하는 바네사를 인생 역전의 제물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후 웅장한 저택 스톤헤이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니나와 바네사의 시점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독자에게 누가 진짜 희생양이고 누가 진짜 사기꾼인지 질문을 던진다. 인스타그램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바네사의 모습은 진실이었을까.
자넬 브라운은 《사라지는 나를 지켜봐 줘》 《우리가 원한 건 전부였어》 등으로 미국 스릴러 장르의 주요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브라운의 작품인 《프리티 씽》은 지난해 출간 이후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니콜 키드먼 주연의 아마존 TV 드라마로도 제작된다. SNS가 현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진실이란 무언가에 대한 질문을 빠른 속도와 강렬한 흡인력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홍선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