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대란’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국내 수출 기업이 선박 부족으로 수출을 못 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최근 미국·유럽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로 글로벌 수요가 폭증하면서 2차 화물대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수요 회복으로 글로벌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지만 선복량(해운사의 적재능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연일 최고치 경신하는 운임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대표적 글로벌 컨테이너선 운임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선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30일 3100.74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SCFI는 산출 시작일(2009년 10월 16일)을 1000으로 보고 시기별 운임지수를 산출한다.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 4월 말(818) 대비 세 배 이상으로 올랐다. 한국 수출 기업이 주로 이용하는 미주와 유럽 항로 운임이 크게 상승했다. 미주 동부해안 항로 운임은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6419달러, 서부해안 운임은 5023달러를 기록했다. 두 노선 모두 역대 최고치다. 유럽 운임도 4630달러로, 전년 동기(753달러) 대비 여섯 배 급등했다.
해상운임은 올 1월 최고치를 기록한 뒤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달 한 달 새 20.6% 오르면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화물대란을 촉발시킨 것은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였다. 각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해제하면서 예상보다 수요가 빠르게 회복돼 공급이 부족해졌다.
올 들어 미국과 유럽에선 백신 접종이 확산되면서 ‘보복소비’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화물 수요는 2억138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지난해보다 6.9% 늘어나는 반면 선복량 증가는 절반 수준인 3.4%에 그칠 전망이다. ○선박 부족에 하역 지연까지 악순환코로나19에 따른 검역 강화로 선박 출·도착 스케줄도 잇따라 지연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항만에선 예전보다 근로자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 하역 작업도 늦어지고 있다. 미국 서안의 대표 항만인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 앞바다엔 가전제품과 의료장비 등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선 수십 척이 자신의 하역 순서가 돌아오기까지 평균 2주가량을 대기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선박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박 회전율까지 급감하다 보니 화물 실을 공간이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선사들의 ‘코리아 패싱’도 화물대란을 부추기는 또 다른 이유다. 국내 수출 기업은 중국에서 출발해 한국에서 남은 선적 공간을 채우고 미국·유럽으로 향하는 해외 선사의 컨테이너선을 이용할 때가 많다. 문제는 중국에서 출발하는 해외 선사들이 최근 들어 대부분 만선으로 싣기 때문에 부산항을 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물건을 실으면 거리가 멀어 운임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부산항을 거치지 않는 이유다. 유럽 노선 운임도 이집트 수에즈운하 운항 중단 사고 여파로 다시 급등하고 있다. ○HMM은 분기 이익 1조원화물대란은 중소기업에 직격탄이다. 통상 대기업은 포워딩 업체를 통해 선사와 6개월~1년가량 장기 계약을 맺어 선복(적재 공간)을 확보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스폿 계약을 통해 물건을 실어나른다. 통상 컨테이너선당 60~70%가량이 장기 계약 물량이며, 나머지가 스폿 물량으로 배정된다.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으로 스폿 물량을 확보하려는 중소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웃돈을 줘도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 ‘슈퍼갑’이 된 일부 해외 선사가 대기업과 맺은 장기 계약을 파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선사로선 서너 배 오른 스폿 물량으로 계약하는 것이 수익을 더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의 원양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은 해상운임 급등에 힘입어 ‘분기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열 전망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의 올 1분기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평균 전망치)는 매출은 2조원대 중반, 영업이익은 1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1분기 추정 영업이익은 1976년 창사 이래 최대 수준이다. 작년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9807억원)보다 많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연간 기준 사상 최대치였다.
HMM은 2015년 1분기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 20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경기 침체로 물동량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보복소비가 글로벌 물동량 증가와 해상운임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