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자기 돈까지 보낸 송금책 '무죄'

입력 2021-05-02 11:17
수정 2021-05-02 11:27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송금책 역할을 하던 중 자신의 돈까지 보낸 60대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스스로 손해를 보는 행동을 했고, 송금책 역할에 대한 대가도 받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다.

춘천지법 형사3단독 정수영 부장판사는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A(6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A씨는 작년 5월 자신을 은행 직원으로 속인 성명불상의 전화금융사기 모집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A씨는 ‘계좌에 입금된 1300만원을 찾아 전달해주면 낮은 이율로 정부 지원 대출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는 자신 명의의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이후 A씨는 입금된 피해금 1300만원 중 400만원을 찾아 조직에 건넸고, 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사기 범행을 방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대해 정 판사는 “A씨가 전화금융사기를 인식하고, 이를 용인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씨에게 접근한 모집책이 ‘거래 실적을 올리면 대출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안내했고, 이에 A씨가 자신의 계좌로 입금된 피해액 중 400만원만 출금해 전달하고 900만원은 자신의 별도 계좌에서 출금해 건넨 점에 주목했다.

정 판사는 “피고인이 전화금융사기를 인식하고도 용인했다면 자신이 의도한 대출도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900만원을 손해 보는 것이어서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 사건 행위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받은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전화금융사기 가능성을 용인할만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A씨가 은행에서 900만원을 찾는 과정에서 전화금융사기 예방진단표를 작성하면서 사실과 다르게 체크하기도 했다. 정 판사는 “현실적으로 은행에서 내주는 주의 문건을 잘 살피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봤다.

정 판사는 “이 사건 피해자도 피고인과 비슷한 방법으로 기망당했다”며 “고령에 학력이 낮고 제1·2금융권 대출 경험도 없는 피고인이 성명불상자의 지시가 전화금융사기임을 위한 기망임을 파악하지 못하고 대출 과정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최진석 기자